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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뉴스-의림지에서] 운명이다
- 양호근
- 조회 : 2819
- 등록일 : 2011-04-14
[세저리뉴스-의림지에서] 운명이다
새벽 4시. 참방거리는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 의림지다. 물안개가 낮게 깔리어 구름위에 있는 듯하다. 나는 왜 여기에 있나.
1. 운명
의림지(義林池)는 둘레 약 2킬로미터, 평균 수심 약 10미터에 이르는 저수지다. 충청북도의 기념물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3대 수리시설이라고 한다. 이봉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제천(堤川)이라는 이 지역 이름도 이렇게 둑이 발달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제천은 고려시대 제주(堤州)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바뀌었다. 필자에게 그래서 제천은 제2의 고향처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필자의 고향이 수산리인데, 제천에도 수산리가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우연만은 아니리라.(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도 의림지와 비슷한 크기의 저수지가 있다. 그 역사가 의림지만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이는 물결은 쏙 빼닮았다. 그런 의림지를 세저리에 들어와서 한 달이나 지난 후에야 찾았다. 익히 들은바와 같이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다. 으슥한 숲길은 세저리 커플들이 즐겨 찾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뽕샘과 함께.
내가 왜 여기 왔을까............. (아, 오해하지 마시길. 의림지 첫 데이트 상대가 뽕샘이란 사실을 개탄하는 말이 아니다. 그날 봉쌤께서 사주신 낙원식당의 밥은 이름값을 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충북 제천이라는 동네에 오게 됐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많은 단서들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제천시 도곡리에 한 묘지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민기의 묘인데, 제주목사를 지낸 바 있다. 재임 중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부역과 조세를 가볍게 해 제주민들의 신망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누구를 숙청해야할 지는 모르겠으나, 과제와 학비를 가볍게 하여 세저리민들의 신망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민 씨라서 혹시 우리 민보영이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청풍(제천의 옛 이름) 부사를 지냈던 우암 송시열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다. 제천과 제주에 둘 다 연이 있다는 정도의 관계다. 송시열은 남인의 숙적이기에 오히려 봉샘이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관계가 있다. 노론을 이끈 송시열은 제천 황강서원에서 모셔지고 있다. 이에 맞서 남인계의 브레인 봉쌤은 제천에 이 학당을 차렸다.
송 씨라서 혹시 우리 송가영이나 송지혜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관계가 있을 수 있겠다.
송시열의 수제자인 조선 중기의 학자 수암 권상하는 청풍(역시 제천)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다졌다고 한다. 권상하는 안동 권씨다. 권쌤이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연결된다.
그러면 봉쌤과 권쌤은 참 묘한 관계가 된다. 과거의 적은 후세에 부부가 된다고 하니 권쌤과 봉쌤도... "운명"이다.
내친김에 남인계의 수장 퇴계 이황까지 가보자. 제천의 최남단 충주호 근처에 옥순봉이라는 절경이 있다. 비가 갠 후, 봉우리가 옥 같은 죽순이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나중에 꼭 가보고 싶다.) 그런데 이 옥순봉이 제천지역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양팔경에 속해있다. 단양은 제천과 접경해 있는 지역이다.
사료에 따르면 조선 명종 때 단양 군수였던 이황이 청풍 군수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 부탁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이라고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옥순씨를 단양에 뺏앗겼다.
그래서 봉쌤에게는 옥순씨를 제천십일경으로 찾아와야 할 의무가 생겼다. "운명"이다.
제천은 알수록 재미있는 동네다. 제천은 의병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매년 10월에는 의병제를 한다. 제천에서 활약한 의병 중에 눈의 띄는 사람이 있다. 을미의병 때부터 활약해 의병활동을 이끈 김상태. 혹시 우리 김승태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의 열쇠가 아닐까.
그 외에도 엮으려면 수없이 많은 "운명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제천 출신 중에 연예인도 꽤 있다. 희극인 임하룡은 단양에서 태어났지만 제천고 출신이고, 신동엽은 제천이 고향이다.
엄정화, 엄태웅 남매도 제천 출신인데, 우리 엄지원이도 여기 오게 된 "운명"이 혹시? "괸당(제주 사투리로 친인척)"이라면 싸인 좀 받아주라. 엄기영 싸인은 사양하겠다.
영화배우 정웅인도 희극인 정종철도 제천 출신이다. 똘끼에는 그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우리 정혜정이도 혹시? 그래..., 너도 "운명"이다.
아무튼 이렇게 역사와 문화를 넘나드는 우리 "운명 공동체". 우리는 제천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올 수밖에 없어서 온 것이다. "운명"이었다.
2. 꾼
2011년 3월 초 세저리에 입주했으니, 거의 한 달 만에 <세저리뉴스>의 배달꾼이 됐습니다. 그땐 막내 기자였는데, 이젠 편집장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게 누구였죠?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답을 달아주세용. 상품으로 깜군의 노란색 꽃무늬 팬티를 드립니다. -참고: 한겨레21 최근꺼-만리재에서)
저도 2009년 9월말 창간 이래 지금껏 <세저리뉴스>와 함께 해 온 세 명의 편집장(김화영, 곽영신, 이선필)과 숱한 동료 기자들의 어깨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운명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지난 4월 7일 신문의 날, 우리 <세저리뉴스> 기자단과 봉쌤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편집장 선거를 위해 배론성지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더게임오브데쓰 방식으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봉쌤이 "신난다 재미난다"를 외치면 기자단은 첨단 장비인 은젓가락을 활용해 투표했습니다. 무효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후, 맛난 음식을 먹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우리 기자들은 배때기를 두드리며, 소화 겸 2차로 제천 최고의 맛집 "늘봄가든"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겁 한 사발씩 시켜서 먹었는데, 혹시 밤에 야식이 당기시면 강춥니다!!!!!!!!!!
그러면 여기서 <세저리뉴스> 4기 기자단을 소개하겠습니다.
93다마 구슬이, 뽕씽 김희진, 꽃호근, 꽃빤쭈 이준석, 수습기자 진희정, 마초원숙 최원석 기자까지.
세저리뉴스는 "모든 리민이 기자다"를 구호로 하고 있으며, 세저리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세저리뉴스 4기 기자는 아래 조건으로 완전 무장했음을 밝힙니다.
*지원조건! 토익 950이상, JPT 1급, 한국어능력시험1급, 준수한 용모, 어느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취재능력, 이런 분들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위의 조건에 충족되는 분들은 이제 그만 좋은 언론사에 입사하셔야죠. 단 하나, 세저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면 됩니다. -홍담
새벽 4시. 참방거리는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 의림지다. 물안개가 낮게 깔리어 구름위에 있는 듯하다. 나는 왜 여기에 있나.
1. 운명
의림지(義林池)는 둘레 약 2킬로미터, 평균 수심 약 10미터에 이르는 저수지다. 충청북도의 기념물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3대 수리시설이라고 한다. 이봉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제천(堤川)이라는 이 지역 이름도 이렇게 둑이 발달한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제천은 고려시대 제주(堤州)라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바뀌었다. 필자에게 그래서 제천은 제2의 고향처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필자의 고향이 수산리인데, 제천에도 수산리가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우연만은 아니리라.(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도 의림지와 비슷한 크기의 저수지가 있다. 그 역사가 의림지만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이는 물결은 쏙 빼닮았다. 그런 의림지를 세저리에 들어와서 한 달이나 지난 후에야 찾았다. 익히 들은바와 같이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다. 으슥한 숲길은 세저리 커플들이 즐겨 찾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뽕샘과 함께.
내가 왜 여기 왔을까............. (아, 오해하지 마시길. 의림지 첫 데이트 상대가 뽕샘이란 사실을 개탄하는 말이 아니다. 그날 봉쌤께서 사주신 낙원식당의 밥은 이름값을 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충북 제천이라는 동네에 오게 됐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많은 단서들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제천시 도곡리에 한 묘지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민기의 묘인데, 제주목사를 지낸 바 있다. 재임 중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부역과 조세를 가볍게 해 제주민들의 신망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누구를 숙청해야할 지는 모르겠으나, 과제와 학비를 가볍게 하여 세저리민들의 신망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민 씨라서 혹시 우리 민보영이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청풍(제천의 옛 이름) 부사를 지냈던 우암 송시열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다. 제천과 제주에 둘 다 연이 있다는 정도의 관계다. 송시열은 남인의 숙적이기에 오히려 봉샘이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관계가 있다. 노론을 이끈 송시열은 제천 황강서원에서 모셔지고 있다. 이에 맞서 남인계의 브레인 봉쌤은 제천에 이 학당을 차렸다.
송 씨라서 혹시 우리 송가영이나 송지혜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관계가 있을 수 있겠다.
송시열의 수제자인 조선 중기의 학자 수암 권상하는 청풍(역시 제천)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다졌다고 한다. 권상하는 안동 권씨다. 권쌤이 제천에 오게 된 운명과 연결된다.
그러면 봉쌤과 권쌤은 참 묘한 관계가 된다. 과거의 적은 후세에 부부가 된다고 하니 권쌤과 봉쌤도... "운명"이다.
내친김에 남인계의 수장 퇴계 이황까지 가보자. 제천의 최남단 충주호 근처에 옥순봉이라는 절경이 있다. 비가 갠 후, 봉우리가 옥 같은 죽순이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나중에 꼭 가보고 싶다.) 그런데 이 옥순봉이 제천지역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양팔경에 속해있다. 단양은 제천과 접경해 있는 지역이다.
사료에 따르면 조선 명종 때 단양 군수였던 이황이 청풍 군수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 부탁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이라고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옥순씨를 단양에 뺏앗겼다.
그래서 봉쌤에게는 옥순씨를 제천십일경으로 찾아와야 할 의무가 생겼다. "운명"이다.
제천은 알수록 재미있는 동네다. 제천은 의병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매년 10월에는 의병제를 한다. 제천에서 활약한 의병 중에 눈의 띄는 사람이 있다. 을미의병 때부터 활약해 의병활동을 이끈 김상태. 혹시 우리 김승태가 제천에 오게 된 "운명"의 열쇠가 아닐까.
그 외에도 엮으려면 수없이 많은 "운명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제천 출신 중에 연예인도 꽤 있다. 희극인 임하룡은 단양에서 태어났지만 제천고 출신이고, 신동엽은 제천이 고향이다.
엄정화, 엄태웅 남매도 제천 출신인데, 우리 엄지원이도 여기 오게 된 "운명"이 혹시? "괸당(제주 사투리로 친인척)"이라면 싸인 좀 받아주라. 엄기영 싸인은 사양하겠다.
영화배우 정웅인도 희극인 정종철도 제천 출신이다. 똘끼에는 그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우리 정혜정이도 혹시? 그래..., 너도 "운명"이다.
아무튼 이렇게 역사와 문화를 넘나드는 우리 "운명 공동체". 우리는 제천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올 수밖에 없어서 온 것이다. "운명"이었다.
2. 꾼
2011년 3월 초 세저리에 입주했으니, 거의 한 달 만에 <세저리뉴스>의 배달꾼이 됐습니다. 그땐 막내 기자였는데, 이젠 편집장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게 누구였죠?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답을 달아주세용. 상품으로 깜군의 노란색 꽃무늬 팬티를 드립니다. -참고: 한겨레21 최근꺼-만리재에서)
저도 2009년 9월말 창간 이래 지금껏 <세저리뉴스>와 함께 해 온 세 명의 편집장(김화영, 곽영신, 이선필)과 숱한 동료 기자들의 어깨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운명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지난 4월 7일 신문의 날, 우리 <세저리뉴스> 기자단과 봉쌤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편집장 선거를 위해 배론성지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라 더게임오브데쓰 방식으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봉쌤이 "신난다 재미난다"를 외치면 기자단은 첨단 장비인 은젓가락을 활용해 투표했습니다. 무효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후, 맛난 음식을 먹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우리 기자들은 배때기를 두드리며, 소화 겸 2차로 제천 최고의 맛집 "늘봄가든"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겁 한 사발씩 시켜서 먹었는데, 혹시 밤에 야식이 당기시면 강춥니다!!!!!!!!!!
그러면 여기서 <세저리뉴스> 4기 기자단을 소개하겠습니다.
93다마 구슬이, 뽕씽 김희진, 꽃호근, 꽃빤쭈 이준석, 수습기자 진희정, 마초원숙 최원석 기자까지.
세저리뉴스는 "모든 리민이 기자다"를 구호로 하고 있으며, 세저리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세저리뉴스 4기 기자는 아래 조건으로 완전 무장했음을 밝힙니다.
*지원조건! 토익 950이상, JPT 1급, 한국어능력시험1급, 준수한 용모, 어느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취재능력, 이런 분들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위의 조건에 충족되는 분들은 이제 그만 좋은 언론사에 입사하셔야죠. 단 하나, 세저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면 됩니다. -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