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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오마이뉴스] 명문대생 시골대학원 유학 이유
- 관리자
- 조회 : 116546
- 등록일 : 2013-09-30
명문대생들, 시골 대학원으로 "유학" 오는 이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24시
▲ <단비뉴스> 창간 2주년 날, 저널리즘스쿨 학생과 전임교수가 단비스튜디오에 모여 축하하고 있다. | |
ⓒ 손지은 |
"언론사가 당장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재를 키웁니다."
올해 개원 6년째인 충북 제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언론인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과 실무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저널리즘스쿨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해도 사설 아카데미나 현직 기자가 진행하는 글쓰기교실을 수강하는 등 별도로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이다. 시간과 비용의 중복을 피하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과 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해 한국언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곳의 목표다.
2008년 개교 이래 스쿨 이름이 점점 알려지면서 2013년도에는 27명 모집에 53명이 지원해 2 대 1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다. 대학졸업생들의 해외 유출로 서울의 명문대학들까지 대학원생 모집이 쉽지 않은 시대에 전국 유수대학은 물론 런던대 인디애나대 와세다대 등 외국대학 출신자들까지 이 "시골 학교"로 "역유학"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스터디룸에는 고유의 이름이 있다. 밤새워 공부하고 "새벽별"과 "아침이슬"을 바라보며 기숙사로 돌아가라는 뜻. 취업하지 못한 채 졸업한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글감옥". 원하면 언제든지 수감될 수 있다. 왼쪽 아래는 스쿨 전용 도서관인 "단비서재". | |
ⓒ 손지은 |
바로 이 학교 출신자들이 언론사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저널리즘스쿨이 배출한 언론인은 64명. 제일기획을 비롯한 광고/홍보/SNS 회사에 카피라이터 등으로 취업한 8명까지 합하면 총 72명이다.
언론사 입사자는 기자 46명, PD 6명, 기획관리 등 4명, 방송저널리스트 2명, 방송카메라기자 3명 등이다. 언론사별로는 <오마이뉴스>에 5명씩, <연합뉴스>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네트워크사에 4명씩, <중앙일보> 에 3명씩 합격자를 배출했다.
대부분 대학 언론학과에서는 언론계 간부 출신 교수가 극소수여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이론 위주로 교육하는 것과 달리 저널리즘스쿨에서는 전현직 언론인 출신 교수들이 당장 현장에 투입됐을 때 필요한 실무를 가르친다. 거기에 인문·사회 교양강좌를 다양하게 개설해 실무와 인문학 소양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한다. 교육목표는 1학년은 1년차 현역기자∙PD 이상, 2학년은 2년차 이상이다.
멘토를 맡는 전임교수진은 <조선일보> <한겨레> 출신이면서 <경향신문> 시민편집인을 맡고 있는 이봉수 대학원장, <경향신문> <국민일보> 기자 출신인 제정임 교수, 시사교양국에서 "PD수첩"과 "사과나무"를 연출한 권문혁 교수, 탐사보도팀장을 지내고 올해 부임한 김용진 교수(<뉴스타파> 비상임대표), 영어 원어민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논객과 교수 등 50여 명으로 구성된 강사진은 인문사회 교양교육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1"의 강사진은 이택광, 정희진, 진중권, 안광복, 천정환 등으로 짜여있다.
"피투성이 첨삭"에 "멘붕"하는 학생들
입학 후 처음 만나는 과목은 "취재보도론"과 "한국사회이슈와 칼럼쓰기"다. 전공필수로 지정된 두 과목은 저널리즘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다. "취재보도론"은 사건·사고, 인터뷰, 기획, 스케치 등 각종 기사를 직접 쓰면서 현장취재 요령과 기사작성의 기초원리를 배운다. 사건·사고 기사를 실습할 때는 강의실이 경찰서 출입기자실로 변신한다. 강의를 담당하는 제정임 교수가 "OO경찰서 형사과장"으로, 학생들은 "출입기자"가 되어 모의 기자회견을 하는 식이다.
제 교수가 사건 개요를 브리핑하면, 학생들은 탄탄하게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질문 공세를 편다. 이 시간에는 잠깐의 정적도 금물이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거나, 중요한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하면 기사 못 쓴다"는 교수의 따끔한 충고가 이어진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학생들은 시간 내에 기사를 써서 송고해야 하고, 마감이 끝나면 모두의 기사를 수강인원에 맞게 인쇄한 뒤 빨간펜을 들고 서로의 기사를 꼼꼼히 살핀다. 적확한 표현을 썼는지, 기사에 들어갈 "팩트"는 모두 챙겼는지 등 제 교수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부지런히 동기의 기사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한국사회이슈와 칼럼쓰기"는 토지∙주택, 양극화, 남북관계, 다문화, 보수와 진보 등 한국사회의 핵심 이슈들을 분석하고 논평하는 통찰력을 기르는 수업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칼럼까지 써본다. 몇 차례 써내는 칼럼들은 이봉수 교수의 첨삭을 거쳐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시뻘겋게 변한 자신의 칼럼이 빔프로젝터로 스크린에 뜨면 수강생은 원망 섞인 비명을 내지른다. 더욱 민망한 건 그 다음이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칼럼을 띄워놓고 적나라한 평가가 시작된다. 입학 전 학보사에서 글깨나 쓴 학생도 이곳에서는 예외 없이 얼굴이 벌게진다. 민망함이 큰 만큼 얻는 것도 많다. 자신의 글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단번에 알 수 있고, 스무 명 넘는 동기의 글을 보면서 자기가 써보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내공을 쌓게 된다.
▲ 학생들이 제출한 기사와 칼럼은 이봉수 교수의 첨삭을 거친 뒤 피투성이로 변한다. "피투성이 첨삭"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 |
ⓒ 손지은 |
그 밖에도 탐사보도 기법을 익히는 "탐사보도실습", 시사현안들을 망라하는 "시사현안 세미나" 제목달기와 편집, 보도사진 등을 현직 편집기자와 사진기자에게 배우는 "신문/웹진편집과 사진실습", 방송 프로그램 개발과 기획에서부터 연출요령, 프로그램 구성과 편집에 이르기까지 방송 프로그램 제작 전반을 배울 수 있는 "방송제작론" "다큐멘터리 제작실습" 등 실무와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과목 35개가 개설되어 있다.
차곡차곡 쌓이는 "포트폴리오"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은 실습매체인 <단비뉴스>의 취재편집진으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단비뉴스>는 편집부와 취재부, SNS 홍보를 담당하는 전략기획부, 영상부로 구성돼있고, 취재부 안에는 청년팀, 지역농촌팀, 미디어팀, 환경팀 등 4개 팀이 있다. 학생들은 매주 화요일 전체 구성원이 모이는 "단비회의"에서 자유롭게 기사 아이디어를 내고, 동기와 담당 교수의 피드백을 받아 취재 계획을 다듬는다.
▲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단비뉴스>의 전체 회의.모든 학생이 모여 기사 아이템을 발제하고, 지도교수의 피드백을 받아 취재 계획을 다듬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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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기획한 기사뿐 아니라 수업에서 나온 과제도 대부분 기사가 된다. "경제사회쟁점토론" "시사현안세미나" "한국사회이슈와 칼럼쓰기" "언론과 한국사회" 등에서 쓴 칼럼은 지도교수의 첨삭을 거쳐 "단비발언대"로 내보낸다.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는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에서는 과제가 강연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것도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된다.
매년 선보이는 "탐사기획시리즈"는 <탐사보도실습> 수강생들의 작품이다. 팀을 짜고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 모두 이 수업에서 이뤄진다. 탐사보도에 관한 이론을 습득하고, 현직 기자가 쓴 기사를 꾸준히 읽으면서 감각을 익힌 학생들은 숱한 기획회의 끝에 기사 방향을 가다듬고 그에 걸맞은 현장에 찾아간다.
현재 연재중인 "2013 대한민국 노인보고서"는 가난∙질병∙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한국 노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담아내겠다는 취지 아래 학생들이 직접 경북 영주의 농촌 마을과 노인요양원 등에 찾아가 함께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사다.
▲ <단비뉴스> 메인 페이지. | |
ⓒ 손지은 |
<단비뉴스>는 실습매체인 동시에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비영리 "대안언론"이기도 하다. 창간기획이었던 "한국인의 5대 불안" 시리즈는 고된 노동현장과 쪽방·노숙·고시원 등 빈곤층 주거 공간을 직접 체험하고 쓴 르포기사로 2011년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차지했다. 그 해 <벼랑에 선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2012년 한국인권재단이 시상하는 "올해의 인권 책"으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 학기를 마치고 나면 <단비뉴스>에 본인 이름의 기사가 차곡차곡 쌓인다. 수많은 기사는 <오마이뉴스>나 포털에 동시 게재되고, "농촌보도실습" 과제는 <한겨레>의 "나는 농부다" 시리즈로 나가고 있다.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생기는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경험들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다. 수업과 실습, 그리고 취업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있는 저널리즘스쿨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숙식 무료 제공, 개인 PC에 전용 도서관까지
수업이 없는 나머지 시간은 스터디룸에서 개인 공부를 하거나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며 보낸다. 스터디룸에는 PC가 설치된 개인별 좌석과 종합일간지들이 비치되어 있어 신문을 읽고 글을 쓰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 수업 이외 시간에는 동기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하며 보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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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층에는 올해 개관한 저널리즘스쿨 전용 도서관 "단비서재"가 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교수진이 추천한 책과 학생들이 신청한 희망도서, 선배들이 기증한 책까지 총 1065권이 비치돼있다. 1인용 소파와 커피 머신도 있어 아늑한 분위기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꼽은 최고 장점은 같은 꿈을 공유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휴일도 없이 함께 공부하고 무료 기숙사에서 하루 세끼 한솥밥을 먹으면서 그야말로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슬럼프"에 빠진 동기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공채 시즌에는 밤늦도록 같은 공간에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서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루의 피로를 "야식"으로 달래는 날도 잦다. 교수들도 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해 밤에도 대개 학교에 머문다.
▲ 단비서재에서 회의 중인 <단비뉴스> 청년팀. 일주일에 한번, 팀원이 모여 자유롭게 아이템을 발제하고 서로 피드백한다. | |
ⓒ 손지은 |
어느 날 옆에서 공부하던 동기가 언론사에 합격해 떠나면 조급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부지런히 논술/작문만 쓰는 게 합격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졸업학기인 박다영(25·여)씨는 자신의 교양이 꽤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갖가지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는 게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 없이 기자가 된다면 아마 "직장인 기자"에 머물게 되지 않을까요? 좋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단련한 시간이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봉수 대학원장은 우리나라 언론 수준이 유럽 등 선진국에 크게 뒤지는 것은 언론인 충원제도에서 1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의 표준을 공유하지 못한 채 언론사에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받는 게 큰 문제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언론고시"에 1만명이 몰린다는데 인재가 없을 리 없지요. 문제는 글 쓰는 테크닉만 좀 익혀서 언론사에 들어간 뒤 선배의 판에 박힌 문장 스타일과 제작기법, 심지어 가치관까지 빨리 닮아가는 사람이 좋은 부서 배치받고 간부로 성장해 간다는 겁니다. 요즘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기자들은 밥도 같이 안 먹는다는데 나라가 두 쪽 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저널리즘스쿨에서 언론의 스탠다드를 공유한 뒤 성향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언론에 들어가는 게 보통입니다. 적에도 팩트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드물지요. 우리 저널리즘스쿨이 실무교육과 함께 인문사회 교양교육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은 물론이고 언론윤리를 고양하는 데 기초가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입사하는 데는 물론이고 대기자나 대PD로 커나가는 데도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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