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1978년 첫 출판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30주년을 맞았을 때, 판매고 100만 부를 훌쩍 넘긴 이 소설의 작가 조세희씨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도시 개발의 쇠망치에 쫓겨
정든 집을 떠나야 했던 난장이가족의 슬픈 이야기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큰 울림을 이어온 데는 "변치 않는 현실"의 영향이 컸다는 얘기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개발업자들의 탐욕과, 등 떼밀리는 사람들의 절규, 공권력을 등에 업은 "용역"들의 횡포가 다 여전하다는 게 그가 말한 현실일
것이다.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철거민들을 용역 대신 경찰 특공대가 진압하다 빚어진 "용산 참사"는 "2009년 판 난쏘공"의 가장 비극적인
삽화라고 할 만하다.
"부동산"과 "개발"은 1960~70년대 이후 국가주도의 압축 성장이 가속화된 이 나라에서 가장
애증이 엇갈리는 단어들이 됐다. 출발선이 유리했던 사람들은 개발 정보를 얻고 투자 기회를 잡으면서, 혹은 갖고 있던 땅이 "금싸라기"로 변하면서
벼락부자가 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뒤를 따르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흉내를 내고 싶어도 밑천이 없는 사람들은 "내 몸 누일 방 한 칸"을 위해 갈수록 악전고투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개발과 재개발, 건축과 재건축이 흐드러진 "한 판"을
벌이고 나면 집값은 또 한번 치솟고, 투기꾼들은 엄청난 판돈을 챙겼다. 그러나 서민들은 "더 멀어진 내 집 마련 꿈"에 눈물을 훔쳐야 했다.
재개발의 불도저에 밀려, 혹은 치솟은 집세를 감당 못해 더 허름한 변두리로 쫓겨 갔다가 끝내 거처를 얻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있었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부동산 광풍"을 역대 정부가 앞장서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살린다며
건설 투자에 돈을 쏟아 붓고, 금리를
낮춰 주택 대출을 쉽게 해 주고, 집을 아무리
"사재기"해도 세금 부담이 없도록 보유세를 낮게 유지했다. 부동산값 폭등이 큰 사회 문제가 되면 이따금씩 투기대책을 내놓았지만, 건설재벌과
땅부자 등 "건설족"의 조종을 받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곧 무력화시키곤 했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는 등 투기억제장치를
강화했을 때는 이제 좀 달라지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역사는 더 지독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새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해 "집과 땅 사재기"의 부담을 다시 가볍게 해 주었고, 투기지역지정을 대거 풀고
전매제한기간도 줄여 "마음 놓고 거래들 하시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다. 미분양아파트를
정부가 대신 사 주고, 재개발 재건축관련 규제를 대폭 풀고, 주택 500만 호를 짓겠다고 하는 등 건설사들의 입이 쩍쩍 벌어질 계획들을 내
놓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년간 36번에 걸쳐 발표된 100여 건의 부동산 대책 중 84%가 건설업체들과
다주택보유자들, 즉 잠재적인 "투기세력"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며칠 전 확정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는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한시적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집을 세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 쉽게 주택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세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을 포함한 "땅부자" 내각의 고위 관료들과 대다수 정치인들이 큰 수혜자로 포함될 이런 정책들은 부동산값의
거품 제거를 막거나, 값을 더 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무주택자들의 내 집 장만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살인적인 사교육비와
주택부금에 허리가 휘는 서민들의 살림은 더더욱 고단해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도 산동네 쪽방촌을 전전해 봤고, 철거민
신세였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심정을 안다는 이가 어떻게 "재개발 속도전"을 외치며 철거민들을 밀어붙이고, 부동산 투기꾼들 편을
들어 쪽방촌 사람들을 절망케 하는 지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오래 "건설족" 과 어울려 온 나머지, 젊은 날의 기억은 껍질만 남은
것일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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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국제신문] 시론/내 집 한 칸은 어디에
- 관리자
- 조회 : 4300
- 등록일 : 2009-05-06
[시론] 내 집 한 칸은 어디에 /제정임 2009년 "용산 참사" MB정권이 연주한 부동산 광풍의 슬픈 서곡이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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