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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국회보]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것

  • 관리자
  • 조회 : 4036
  • 등록일 : 2009-04-06

국회보 4월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것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전자제품처럼 겉으로 봐서는 그 성능을 쉽게 알 수 없는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흔히 어느 회사 제품인지, 즉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살피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무리 기계를 보는 안목이 없다 해도 삼성이나 LG 상표를 붙인 냉장고를 살 때 크게 갈등하지 않을 것이다. ‘믿을 만한 기업’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도 이런 브랜드 가치가 작용한다. 회사이름이 그리 익숙하지 않아도 독일이나 일본산 기계라고 하면 왠지 미더워 보이고, 프랑스산 화장품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사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축적된 신뢰와 호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안홀트’라는 국제 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세계 50개국 중 33위로 나타났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13위인데, 국가브랜드 가치는 이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흔히 생각되는 인도(27위), 중국(28위)보다 못하고, 태국(34위)과 비슷한 형편이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대대적으로 치르고, 대외 홍보비로 적잖은 국가 예산도 쏟아 부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정부가 만든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어윤대)가 최근 내 놓은 조사결과를 보면 그 궁금증이 좀 풀린다. 지난 2월 월드리서치와 공동으로 상사주재원, 유학생 등 주한 외국인 1000명 대상의 여론조사를 해 보니, 우리의 국가브랜드가 저평가되는 가장 큰 원인이 남북대치상황인 것으로 지적됐다는 것이다. ‘한국이 낮은 평가를 받는 원인을 복수로 꼽아 달라’는 질문에서 48.4%의 응답자가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을 지목했다고 한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정학적 위험(geopolitical risk)이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꼽힌 것은 국제사회 기여 미흡(44.1%) 정치사회적 불안(41.5%) 이민이나 관광지로서의 매력부족(38.8%) 등이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남북의 대치 상황이 국가브랜드 저평가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혹은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다, 이명박 정부의 대처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오는 2013년까지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15위로 올려놓겠다며 이런 저런 실행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다 속절없어 보인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남북관계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 매력적인 관광 상품을 아무리 개발하고 홍보해 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고 보면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국인이라고 했을 때 ‘핵무기’나 ‘김정일’을 화제로 올리기 일쑤였던 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코스의 하나가 여전히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투어라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나라 제품이 아무리 성능과 디자인에서 손색이 없어도 선진국 제품의 70% 정도밖에 값을 못 받고 있는 점,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아예 국적을 감추고 회사 이름만으로 승부하려고 하는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려올 때도 선진국들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니 남북대치의 경제적 비용이 이만 저만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보도에 따르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활동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정부관계자는 ‘남북관계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은 일단 인정하고 그 밖의 이유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줄여 나가겠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남북의 대치상황을 어쩔 수 없는 변수라고 보는 이 시각, 바로 그게 심각한 문제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보수 세력들이 ‘퍼주기’라며 매섭게 비판했지만, 북한을 어르고 달래가며 금강산 관광을 진전시키고 개성공단을 만들고, 경의선 철길도 연결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대북교류도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키워갔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이나 탈북자 문제 등이 늘 목엣 가시처럼 존재했지만, 인내심 있게 교류를 진전시키다 보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도 가시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특히 개성공단은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한 이상적인 협력 모델로,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성장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개성공단을 다녀간 1000여 명의 외국인들은 남북협력의 ‘실험’에 주목하며 한반도의 장래를 낙관하는 여론을 세계에 확산시켰다. 사람들은 남북 철도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곧장 달릴 수 있는 육로를 터서, 시장 확대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꿈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무너졌다. 새 정부의 실력자들이 과거 정부와 북한간의 합의를 무시하는 발언 등으로 분위기를 냉각시키더니, 급기야 금강산 관광객 총격 등 북한의 도발과 우리 정부의 강경 대응이 맞부딪쳐 빙하기 같은 대립상황을 낳고 말았다. 고작 1년여 사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경의선 철로의 통행이 끊겼으며, 남북한 소통의 ‘핫라인’도 단절됐다.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은 북한의 통행 제한 등으로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워졌고, 그곳에 투자한 기업인들이 ‘이러다가 아예 폐쇄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전남 강진군의 ‘청자보물선 뱃길 재현사업’ 충북제천의 ‘금강산 제천 사과 축제’ 경기도의 ‘평양 당곡리 벼농사 협력사업’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납북교류 사업도 다 중단됐다.

이런 남북관계 악화가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대로 ‘발전을 위한 일시적 진통’이라면 희망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부의 설명에 아무리 귀 기울여 봐도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우리가 이런 저런 지원을 해 주고,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가 되도록 지원해 주겠다’하는 것이 이 정부의 대북 구상 핵심이다.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이라는 정책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릴 거지로 보느냐’는 태도로 이 제안을 일축하면서 남한 정부를 따돌리고 미국과 직접 거래하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 등으로 한반도 긴장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우리의 지정학적 위험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들이 굶어 죽는데도 핵무기 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비합리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상대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당사자이고, 우리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상대로 협상해야 하는 처지라는 게 비정한 현실이다. 저쪽은 ‘내가 한 장을 내 놨으니 너도 한 장을 내놔야 한다’ ‘네가 한 대 쳤으니 나도 한 대 치겠다’는 상호주의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 떼쓰는 어린아이 같은 상대를 어떻게 구슬러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끌고 갈 것인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인내심 있게 나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아무 대안 없이 남북관계를 방치했다가는 점점 북한의 도발 수위를 높여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정말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출신으로 누구보다 계산에 밝아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어떤 것이 실리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실용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그가 우리에게 새로운 ‘블루오션(저경쟁시장)’이 될 수 있는 북한 경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경제전문가인 임성훈 교수는 ‘북한을 사라’는 책에서 ‘통일 비즈니스’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기회를 줄 수 있는 지 강조한다.

“(남북한 경제가 통합되면) 물리적 공간은 현 크기의 한 배, 소비인구는 절반가량이 더 늘어난다........중국의 동북 3성, 연해주 등 인근 경제권 흡수로 유발되는 실질 활동 영역까지 포함하면 면적으론 약 10배, 소비규모론 2배가량 커진다.......중국을 철도로 횡단한다면 유럽 물류의 관문인 함부르크 항까진 9000킬로미터로, 바다를 통했을 경우의 1만9000킬로미터 보다 반 이상 거리가 짧다. 짧아진 거리만큼, 추가적 선•하적 절차가 필요 없는 만큼, 물류비용이 절약됨은 당연지사다.”

임교수의 지적대로 제대로 개방이 된다면 북한은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인건비 부담 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로의 이전을 생각하는 중소기업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근면하고 잘 교육된, 무엇보다 우리말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근로자들을 중국보다 훨씬 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다. 값싸고 너른 땅, 대륙진출의 관문이 될 수 있는 땅에 공장을 지을 수 있고, 광석 등 풍부한 천연자원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북한과의 경제교류가 궤도에 오르면 "청년 실업‘에 묶여 있는 우리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거나 자기 사업을 벌일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꿈이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러는 사이 중국과 유럽기업들이 북한의 천연 자원들을 앞 다투어 선점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보다 진짜 더 무서운 것은 ‘남북 대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사고방식이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는데도 황금 같은 기회를 내던지고 있는 이 정부의 안이함이야 말로 우리를 떨게 만드는 가공할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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