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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MBC경제매거진] 경보는 울리지 않으리
- 관리자
- 조회 : 4266
- 등록일 : 2009-03-05
<MBC경제매거진> 3월호
경보는 울리지 않으리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마침내 사표를 냈다. 금산분리 원칙을 포기하면 재벌이 은행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은행의 사금고화’ 등 금융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람이다. 그는 아무리 쥐어짜도 정권의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Think Tank(연구기관)를 Mouth Tank(대변기관)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떠나기 무섭게 금융연구원에서는 금산분리 완화를 지지하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한 연구위원은 “뉴라이트 계열의 원장이 새로 온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밑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아득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한숨과 탄식이 여러 국책 연구기관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의 ‘생각’까지 통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회 연구원들은 정부의 입맛에 맞게 나온 정보통신정책연구소 보고서를 비판했다가 궁지에 몰렸다. 미디어법개정에 따른 고용창출효과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연구결과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더니, 국무총리실과 국회의장실 등에서 연구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국회 사무총장이 ’앞으로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고서는 내지 말라‘고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언론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 온 우석훈 박사(88만원세대 저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비판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받았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미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함으로써 ‘함부로 떠들면 다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분석하고 전망하고 비판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이 사표를 던지거나, 소신과 다른 보고서를 쓰거나, 아예 침묵하기로 결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삼킨 외환위기의 파도가 우리 해변으로 무섭게 몰려오고 있는데도, 그 많은 국책 연구원과 금융권 전문가들은 제대로 경보를 울리지 못했다. 어떤 경우는 잘 몰라서, 어떤 경우는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숨을 죽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일하게 통제되지 않는 외신보도와 맞서 ‘외환위기는 절대 없다’며 기세등등하게 싸움질을 했다. 그 결과는 아주 ‘갈 데까지 간’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