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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경향신문] 할머니, 가족, 연대

  • 관리자
  • 조회 : 4232
  • 등록일 : 2009-01-31
 
[88만원 세대 논단]할머니, 가족, 연대
 
 이동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어렸을 적 마산에 살던 나는 시골 할머니집에 가면 벽장에서 할머니 사탕을 훔쳐 먹는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자 모험이었다. 조금씩 녹여먹고 있노라면 사탕으로 볼록해진 내 볼을 보신 할머니께서 짐짓 야단을 치면서도 사탕 몇 개를 쥐어주셨다. ‘범죄’를 저지를 필요는 없었는데…. 세상 모든 할머니는 뭐든 손자에게 주지 못해 안달이신 분들이 아닌가.
며칠 전 그 할머니께서 여든일곱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철들고 처음 겪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슬픔 그 자체였지만, 찾아오는 조문객들은 ‘호상’이라고들 했다. 우리 집은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삼촌과 고모를 합쳐 14명이다. 4촌들까지 합치면 할머니 아래로 가족 수가 50명이 넘는다. 모두 모여 슬픔을 나눌 수 있으니 가족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나는 어릴 적 우리 식구뿐 아니라 전체 가족의 품에서 자라났다. 내가 업혀본 고모와 누나의 수는 열 명도 넘는다. 사촌누나가 공부를 돌봐줬고, 고모와 삼촌이 대학등록금을 대주기도 했다.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친구는 등록금 대출을 받으면서 나를 부러워했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는 ‘패밀리’인데 그것은 ‘조폭’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조폭영화 <비열한 거리>에서도 주인공은 ‘패밀리론’ 또는 ‘식구론’을 설파한다. 아무도 자기 밥그릇 챙겨주지 않는 거리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한솥밥 먹는 ‘식구’를 만드는 것이란다. ‘식구’로서 의리를 지키는 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때 ‘식구’는 물론 특정한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조직이라는 점에서 ‘패거리’라고 하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무리짓기’는 생존에 필요한 전술이지만 집단적 배타성을 강하게 띨 때 패거리주의로 비난받는다. 반면 개방성이 강하면서도 서로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무리짓기는 ‘연대’라는 이름으로 좋게 불린다. ‘패거리’가 다른 패거리에 대한 ‘적의’로 결속력을 다진다면, ‘연대’는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연대의 개념이 강했던 우리 사회에 부쩍 패거리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심지어 가족 개념에도 배타성과 이기주의가 계속 스며들고 있다. 탈세를 저지르면서까지 기를 쓰고 상속하는 것은 핏줄밖에 믿을 게 없다는 가족이기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사교육 열풍 또한 내 자식만은 잘 돼야 한다는 이기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은 정부가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회안전망이 그토록 허술한 판국에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자식을 돌봐줄 것인가? 절박한 부모의 심정을 마냥 탓할 수만도 없다. 그러나 ‘강부자’ ‘고소영’ 담론은 자식을 지켜줄 여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분노와 체념을 담고 있다. 공적 부조가 개인에게 전가되고 사회복지를 사회가 담당하지 못할 때 사회 전체의 연대는 사라지고 패거리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장례가 끝난 뒤 ‘경기침체의 영향’과 관련한 기획기사 실습과제를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남루해서 보기 싫었던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이 내 할머니를 잃고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모으는 할머니, 거리에서 종이박스를 수거하는 할머니…. 자식손주들에게 모두 다 빼주고 뼈와 가죽만 남은 할머니들이 힘겹게 수레를 끌고 불황의 터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저런 할머니들을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나? 추위는 갈수록 혹독해지는데.

<이동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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