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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니체, 도덕교과서를 깨뜨린 해방군
- 관리자
- 조회 : 4569
- 등록일 : 2009-01-30
니체, 도덕교과서를 깨뜨린 해방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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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2〉
나는 모든 노래를 뽕짝으로 편곡하는 습관이 있다. 어릴 때 옆집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던 이미자·나훈아의 노래를 생활화한 때문이리라. 그런데 독서를 할 때도 이와 비슷한 해독 습관이 있다. 모든 책을 도덕철학서로 해석하는 이상한 버릇이 한동안 계속됐다. 도덕철학서라는 표현이 부담스러우면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읽는 책마다 무의식적으로 ‘차카게 살자’와 같은 행동강령을 뽑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죄 지으면 벌받는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지구 위의 식량은 모자라서 나눠 먹어야 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늙어도 지 밥벌이는 스스로 해야 한다’로 읽었다. 이런 독법 역시 어릴 때 ‘바른생활’ 책을 너무 열심히 외운 나머지 ‘처절한 권선징악 프레임’이 내면화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을까?
대학 2학년 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집어든 것도 동기는 비슷했다. ‘인간적이기 위해 필요한 행동강령을 뽑아내자’는 자기계발의 투지로 충만한 상태에서 책장을 넘겼다. 어라! 근데 이게 뭔가? 인류의 고전으로 분류되는 이 책에 담긴 말들은 ‘바른생활’, ‘승공통일의 길’, ‘국민윤리’ 등등의 도덕교과서를 통해 배운 내용과 어쩜 그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존경하던 목사님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잘못을 하고도 반성하는 양심이 있는 점이라고 했는데, 이 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개가 돌을 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양심의 내용에 대해서도 “양심의 내용은 유년시절에 우리들이 존경하거나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이유 없이 규칙적으로 요구했던 모든 것들”이며 “양심은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몇몇 인간들의 목소리”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치학과 심리학을 배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은 모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도금해 놓은 환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심리의 복잡한 그물로 얽혀 있는 인간의 자연적 조건 속에 있었다. 이 조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신을 바꾸려는 모든 다짐과 행동강령들은 결국은 자기기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훌륭한 자기계발서인가. 성가신 요구들을 쏟아내며 변화를 독려하지만 사실은 변죽과 변덕밖에 없는 요즘의 싸구려 자기계발서들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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