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강남의 ‘다복회’ 때문에 요즘 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계를 얼마나 들고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세명대학교 제정임 교수와 함께 결과 분석해보겠습니다. 이번 조사에는 얼마나 참여했습니까?
제정임: 전국의 10대 이상 남녀 3781명입니다. 17일과 18일 이틀동안 인터넷과 전화자동응답조사를 통해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가운데 여성은 2065명, 남성은 1716명입니다.
유종일: 첫 번째 질문은 계를 들어본 적이 있는 지를 묻는 것이었죠?
제정임: ‘들어본 일이 있다’가 41%, ‘지금도 들고 있다’가 8.5%로 나왔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9.5%가 계를 들어 본 일이 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들어 본 일이 없다 50.5%로 나왔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10대의 경우 계를 해봤다는 응답자 26.3%에 불과한 반면, 50대 이상 응답자 중에는 70.5%가 경험자였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해봤다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직업별로 보면 자영업자와 주부들 사이에서 계를 해봤다는 응답자 비중이 높았습니다.
유종일: 계를 해봤거나 하고 있다는 응답자들에게 곗돈 불입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죠?
제정임: 계를 해봤거나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모두 1837명이었는데, 이 중 월 45.1%가 불입액이 월 5만원이하라고 답하셨습니다. 또 월 5만원이상 10만원이하가 25.8%였는데요, 이 둘을 합하면 전체의 70.8%가 월 10만원이하의 소액을 불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월 10만원이상 50만원이하가 23.5%, 월 50만원이상 100만원이하가 4.1%로 나왔습니다. 월 100만원이상 고액의 거래를 하는 사람들도 1.7%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종일: 같은 분들에게 “여러분이 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을 드렸죠?
제정임: ‘친목을 도모한다’가 60.3%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또 ‘목돈을 모으기 쉽다’가 21.3%, ‘급전을 조달할 수 있다’가 8.6%, ‘수익률이 높다’가 7.8%로 나왔구요, ‘돈의 출처를 숨길 수 있다’는 응답도 0.7%가 있었습니다. 이 중 목돈, 급전, 수익률 등 금융과 관련한 의미를 지목한 답이 전체의 37.7% 가량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연령별로 보면 20대에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계를 한다는 응답 비중 높고, 여성과 50대이상 연령층에서, 직업별로 보면 주부와 자영업자들 가운데서 ‘목돈을 모으기 쉽기 때문’이라는 응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유종일: 역시 같은 분들에게 계를 하다 깨진 적이 있는지도 물어봤죠?
제정임: ‘있다’는 응답이 41.1%였고, ‘없다’가 58.9%였습니다. 직업별로 보면 자영업자와 생산/기술/영업직에서 계가 깨진 경험을 한 사람의 비중이 높았고, 소득을 보면 월 100만원 미만 저소득계층에서 계가 깨진 경험을 한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불안정한 수입과 불안정한 사회관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종일: 계를 한 적이 없는 분들에게는 계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요.
제정임: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63.3%로 가장 많았습니다. 또 ‘집안에 계가 깨져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가 4.9%였습니다. 이 둘을 합하면 전체의 68.1%가 계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밖에 ‘음성적인 경제를 키우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8%, 기타 다양한 의견이 27%로 나왔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계가 안전하지 않다거나 집안에 계가 깨져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유종일: 이번 조사결과, 전반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제정임: 갖가지 예적금 상품이 등장하고 주식투자와 펀드까지 보편화된 요즘에도 여전히 계를 드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것 이채롭습니다. 특히 20대 53.4%, 30대 59.9% 등 젊은층도 계를 해봤거나 하고 있다는 응답 많아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 상호부조의 전통 중 하나인 계의 명맥 끈질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 내용을 자세히 보면 월 10만원이하 소액, 친목도모를 위해 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과거와 달리 금융수단이라기보다 사교 목적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사적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계의 특성상, 깨질 위험이 크다는 문제도 조사결과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유종일: 계가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제정임: 계의 장점은 은행적금과 달리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순서만 잘 받으면 미리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리 목돈을 쓴 사람은 남보다 많은 이자를 부담하고, 늦게 곗돈을 타는 사람은 대신 높은 이자를 붙여 받도록 해, 필요에 따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 계원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어울리는 즐거움도 있죠. 이 때문에 서민들에게 은행문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던 60, 70년대에 계는 가장 인기 있는 재테크 수단이었고 지금도 나름대로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종일: 최근에 논란이 된 이른바 ‘강남 귀족계’, 즉 다복회 사건의 경우 수천억원이 오가는 거래였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거래가 안전장치도 없는 계를 통해 이뤄졌을까요?
제정임: 대형 금융사건 뒤에는 항상 인간의 탐욕과 허영심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도 짧은 시간에 목돈을 쥐겠다는 계산, 세원을 노출시키지 않고 돈을 불리겠다는 욕심, 이른바 ‘강남 귀족클럽’에 소속된다는 허영심 등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계주가 무리하게 계를 운영하면서, 사채까지 끌어 들였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금융투자에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요소 안전성과 수익성인데요, 아무리 수익성이 좋아 보여도 위험성이 지나치게 높은 거래라면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아무런 법적 보호 장치가 없는 계로 큰돈을 거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