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주로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논의된다.‘언론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언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가장 낙관적 견해는 사실의 공표는 그 자체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즉 정확한 사실만 고지되면 공론장의 토의과정을 거쳐 민주적 의사결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관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사상에 기초해 있다. 밀턴과 밀의 자유주의는 ‘사상의 자유 시장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다’는 것이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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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사실의 강조에서 의견의 수용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 자유주의 사상이
태동하던 당시처럼 모든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는 사실의 공표자체가 의미가 있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에는 사실의 공표자체로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경험적 인식을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실의 전달자가 아니라 사실의 해석자로 나서게 되면
해석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란 부담이 생긴다. 책임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언론에 해석자를 요구하고 여기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면 ‘해석과 책임’에 대한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의 전달자를 주장하면서 편법으로 주장을 녹여 넣는
어정쩡한 태도는 앞으로 경쟁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위기 관련 기사를 신문별로 비교해 봤다. 금융시장이 추락할 때는 ‘패닉’,‘공황’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 체결된 지난달 31일자에는 하루아침에 금융위기가 다 사라진 것처럼 흥분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 금융위기 같은 사안은 언론보도의 자기암시적 효과가 크다. 언론의 과장이 현실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려면 사실에 감정을 덧씌워 기사가치를 구성하는 선정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배경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통해 시장의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방침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서울신문은 대체로 침착성을 유지했다.1면 머리기사로 해설기사를
2회 편집한 것,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한 관료들의 공치사를 비판한 작지만 알찬 기사 등이 흥분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들
같다. 하지만 31일자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과정을 다룬 “역시 우리 만수” 기사는 ‘배경설명과 평가’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만수 한 건 했다’는 띄워주기 기사처럼 보인다. 관료가 당연해 해야 하는 일의 과정을 극화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30일자 “여풍 거세지고 경찰대 출신 약진” 기사도 아쉬움이 남는다.‘사시 2차 합격자
분석’이란 타이틀이 붙었지만 분석의 틀은 합격자 출신대학별 서열과 여성의 비율이 전부다. 출신대학별 서열화는 정보라기보다는
대학별 서열에 대한 통념의 확인이다. 여성비율의 증가에 대한 세간의 호들갑도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남성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깔려 있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타성적인 프레임에 대해 정치적 타당성을 질문해 보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남재일 세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