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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뉴스] 우리에게 ‘세저리’란 무엇인가
- 람
- 조회 : 2564
- 등록일 : 2012-10-02
추석, 온 가족이 모여 ‘함께 • 더불어’ 지낸다는 알흠다운 명절을 저는 혼자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를 탐독하며 공자, 맹자에 대한 오해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었습니다. 유교 경전 한번 읽어본 적 없으면서 ‘상명하복’과 ‘남성 우월주의’ 문화의 근원을 그들에게 물으며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던 게 저였으니까요. 뭐, 책 한권 읽었다고 무릎을 ‘탁’치며 유교에 빠져든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인간(人間)으로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명절 혼자 보낸다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주셨던 분들……
여러분이 튀김과 전과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저는 지적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배고파요… 자꾸 페이스북에 음식 사진 올릴 겁니까?!!!!!!! 특히 단비뉴스 편집부장님!!
ㅜ_ ㅜ
주변 사람들이 올리는 음식 사진에 분노하며 인터넷을 끄고 책을 편 제가 느낀 것은, "기시감".
멀어도 너~무 먼,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에 문득 기시감이 들었던 건 ‘공자학교’ 관련 부분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어딘가 본 적 있는……’
‘귀천을 막론하고 인종도 차별하지 않고, 오로지 배우려는 뜻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학교’인 공자학교는 근 2,500년 전 공자가 세웠던 학교랍니다. 큰 돈이 없어도 그저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배울 수 있는, 그러나 들어가긴 쉬웠지만 배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저리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교육의 장이란 무릇 이래야 하는 법’이라며 책장을 넘기는 데 그곳엔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공자의 교육철학이 담겨있었습니다.
첫째,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는 학생은 깨우쳐주지 않는다.
둘째,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학생이 아니면 틔워주지 않는다.
셋째,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 반복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 <논어>
(#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지금 당장 책을 폅니다. 롸잇나우)
연휴를 앞두고,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기는커녕 떠먹여 주려는 것도 받아 먹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던 그 안타까운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공자의 “열 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나보다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말에서도 어쩐지 그분이 떠오르고… 아, 그분에게서 괜히 ‘선비’느낌이 나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봉(奉)발대발, 봉(奉)틀러 등…… 그분의 이름을 딴 여러 애칭(애칭입니다……진짜로)이 있지만,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보……봉자(奉子)님!!! 사…사……존경합니다.
다시, 공자학교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그 곳의 목표는 ‘실무기술’이 아닌 스승의 ‘몸짓’을 익히는 것이라 형이상학적 교육이 주를 이뤘다고 합니다. 농사법이나 취업을 위한 실무기술을 배우기 원했던 학생들의 불만이 없지 않았죠. 오늘날과 다름없이 출세와 취업을 위해 드나들었던 이들도 많았고요.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마음가짐의 차이가 성취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공자와 그 제자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꿈꿨던 사회는 지금 우리가 꿈꾸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 스승과 제자들은 이미 오랜 옛날 죽어 사라졌지만 우리 선생님들과 우리는 아직 함께 가는 중입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질문.
우리에게 ‘세저리’란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명절 혼자 보낸다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주셨던 분들……
여러분이 튀김과 전과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저는 지적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배고파요… 자꾸 페이스북에 음식 사진 올릴 겁니까?!!!!!!! 특히 단비뉴스 편집부장님!!
ㅜ_ ㅜ
주변 사람들이 올리는 음식 사진에 분노하며 인터넷을 끄고 책을 편 제가 느낀 것은, "기시감".
멀어도 너~무 먼,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에 문득 기시감이 들었던 건 ‘공자학교’ 관련 부분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어딘가 본 적 있는……’
‘귀천을 막론하고 인종도 차별하지 않고, 오로지 배우려는 뜻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학교’인 공자학교는 근 2,500년 전 공자가 세웠던 학교랍니다. 큰 돈이 없어도 그저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배울 수 있는, 그러나 들어가긴 쉬웠지만 배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저리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교육의 장이란 무릇 이래야 하는 법’이라며 책장을 넘기는 데 그곳엔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공자의 교육철학이 담겨있었습니다.
첫째,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는 학생은 깨우쳐주지 않는다.
둘째,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학생이 아니면 틔워주지 않는다.
셋째, 한 모서리를 들어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다시 반복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 <논어>
(#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지금 당장 책을 폅니다. 롸잇나우)
연휴를 앞두고,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기는커녕 떠먹여 주려는 것도 받아 먹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던 그 안타까운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공자의 “열 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나보다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있겠지만, 나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말에서도 어쩐지 그분이 떠오르고… 아, 그분에게서 괜히 ‘선비’느낌이 나던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봉(奉)발대발, 봉(奉)틀러 등…… 그분의 이름을 딴 여러 애칭(애칭입니다……진짜로)이 있지만,
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보……봉자(奉子)님!!! 사…사……존경합니다.
다시, 공자학교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그 곳의 목표는 ‘실무기술’이 아닌 스승의 ‘몸짓’을 익히는 것이라 형이상학적 교육이 주를 이뤘다고 합니다. 농사법이나 취업을 위한 실무기술을 배우기 원했던 학생들의 불만이 없지 않았죠. 오늘날과 다름없이 출세와 취업을 위해 드나들었던 이들도 많았고요.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마음가짐의 차이가 성취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공자와 그 제자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꿈꿨던 사회는 지금 우리가 꿈꾸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 스승과 제자들은 이미 오랜 옛날 죽어 사라졌지만 우리 선생님들과 우리는 아직 함께 가는 중입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질문.
우리에게 ‘세저리’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