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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뉴스]수습기자의 휴일
- 숙끙
- 조회 : 2610
- 등록일 : 2012-02-05
수습기자의 휴일
누군가에게 일요일은 주일이지만, 수습기자에겐 휴일이다. 일주일 동안 한 번 내뱉지 못한 한숨을 "휴" 하고 내쉬고, 또 한 번도 제대로 쉬게 하지 못한 내 구두를 쉬게 (休)게 하고, 모처럼 쉴 새 없이 굴린 "짱구"를 쉽게 하는 날이다. 가급적이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사색하면서 쉬고 싶은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취재를 하고 있는 다른 회사 수습기자들 생각을 하면, 휴일이 꼭 휴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에 나는 사고를 많이 쳤다. 쉬는 게 찝찝한 이유다. 굵직한 것만 - 말하자면 오래도록 선배들 사이에서 회자될 것들 - 꼽아도 다섯 개는 될 것 같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보고시간을 넘겨 혼난 일은 여러 번이다. 한 시간 씩이나 시간을 들여 인터뷰 해놓고 쓸만한 정보 하나 얻지 못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북경찰서에서 종로경찰서로 이동하라는 일진 선배 (나 모 기자)의 말을 듣고도 잠이 들어 40분 만에 선배의 전화를 다시 받고 깨기도 했다. 시킨 일은 잘 못하면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기도 했고, 어제 회사에서 내근을 할 때는 제보자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지 않아 애꿎은 안 모 선배가 카메라를 들고 공항철도가 멈춘 검안역가지 왕복 세 시간을 움직이게도 했다. 동기 한동오의 말을 빌리자면, 안 선배가 내 욕을 많이 했다고 해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수습하면서 내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수면이다. 한 두 시간의 "허락된" 수면이 주어진다면 마음 놓고 쉴 수 있을텐데, 밤새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파악하고 취재하려면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사람의 몸은 신기해서 버티려면 또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신체의 리듬은 일정한 정보투입(input)과 정리(arrangement)가 수면시간을 통해 이뤄져야 유지되는 것이라, 휴식이 급격히 줄어든 만큼 갑자기 갈피를 못잡고 흔들린다. 낮에 깨어 있지만 어쩐지 몽상을 하는 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고, 특히 식사를 마친 한 두시간 사이에는 소화기간에 에너지가 집중되 두뇌가 작동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냐는 선배들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이러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라면 어느정도 균형감을 찾아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메뉴얼 없이 취재방식을 배우는 훈련방식이다. 사실 이른바 "언론고시"를 2년 가까이 했지만, 언론사 입사에 필요한 공부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너무 다르다. 막상 수습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중요한 건 무언가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무언가를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다.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에 취재를 하고, 허겁지겁 정리한 모으기만 한 정보를 다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선배에게 보고하는 능력까지 - 일종의 "논스톱 정보제공 서비스" 시스템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취재를 하다보니, 정보를 "손에 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꼈다. 어떤 사건사고가 생기면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나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붙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OOO동에 사는 OOO씨가 월곡역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다가 마주오전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정도의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이 문장은 "사고가 났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만, 기사로 쓰려면 거의 모든 언어적 요소마다 "빈틈"이 있다. 정보가 들어가야 하는 "빈틈"이다.
"오늘 새벽 1시 30분 서울 OOO동에 사는 OOO씨가 소형트럭을 몰고 월곡역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다가 마주오전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OOO동 몇 번지? / OOO씨의 나이, 직업, 자동차/ 음주운전 여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 중이었나/ 신호등 상태/ 오토바이 운전자 신원, 나이, 성별/ 오토바이 종류/ 배달차량인가? / 인명피해/ 재산피해/ 부상정도/ 사고 경위/ 못 봐서 부딛혔나, 과속이었나 등등
처음에는 선배들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진다. 대체 왜 이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자질구레한 정보들이 기사를 쉽게, 논리적으로 쓸 때 모두 필요하다. 어느 선배의 말대로 "내 머릿 속에 사고 당시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져야" 누가 읽거나 봐도 이해하기 쉽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아직 수습에게 기사를 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다음 주부터 "단신 쓰기"를 시작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끼겠지?
잠시 후 저녁 8시 30분에 나는 다시 경찰서로 복귀한다. 종로, 성북, 종암 경찰서 세 곳을 두 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돌아다니면서 취재하고, 중간중간 소방서와 대학교 한 곳, 그리고 트위터로 들어오는 화재 속보를 정리해 보고하게 된다.
이번 주 목표는 첫째, 보고 시간 어기지 않고 둘째, "이야기 되는" 사건 두 개 이상 찾아내기다. 나를 "훈육" 할 일진 선배가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어 아쉽지만, 어떤 선배를 만나든 첫 일진 선배가 지적한 기본기들에 대해 잊지 않는 한 주를 보내겠다. 내일이 정월대보름, 겨울이 끝나간다. 진희정 생일 축하. 리민편집인 생일 미리 축하.
2012.2.5
용문동 집에서
원석
P.S: 나의 살던 고향은 용두산 중턱, 제천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요일은 주일이지만, 수습기자에겐 휴일이다. 일주일 동안 한 번 내뱉지 못한 한숨을 "휴" 하고 내쉬고, 또 한 번도 제대로 쉬게 하지 못한 내 구두를 쉬게 (休)게 하고, 모처럼 쉴 새 없이 굴린 "짱구"를 쉽게 하는 날이다. 가급적이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사색하면서 쉬고 싶은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취재를 하고 있는 다른 회사 수습기자들 생각을 하면, 휴일이 꼭 휴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에 나는 사고를 많이 쳤다. 쉬는 게 찝찝한 이유다. 굵직한 것만 - 말하자면 오래도록 선배들 사이에서 회자될 것들 - 꼽아도 다섯 개는 될 것 같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보고시간을 넘겨 혼난 일은 여러 번이다. 한 시간 씩이나 시간을 들여 인터뷰 해놓고 쓸만한 정보 하나 얻지 못하기도 했다. 심지어 성북경찰서에서 종로경찰서로 이동하라는 일진 선배 (나 모 기자)의 말을 듣고도 잠이 들어 40분 만에 선배의 전화를 다시 받고 깨기도 했다. 시킨 일은 잘 못하면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기도 했고, 어제 회사에서 내근을 할 때는 제보자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지 않아 애꿎은 안 모 선배가 카메라를 들고 공항철도가 멈춘 검안역가지 왕복 세 시간을 움직이게도 했다. 동기 한동오의 말을 빌리자면, 안 선배가 내 욕을 많이 했다고 해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수습하면서 내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수면이다. 한 두 시간의 "허락된" 수면이 주어진다면 마음 놓고 쉴 수 있을텐데, 밤새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파악하고 취재하려면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사람의 몸은 신기해서 버티려면 또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신체의 리듬은 일정한 정보투입(input)과 정리(arrangement)가 수면시간을 통해 이뤄져야 유지되는 것이라, 휴식이 급격히 줄어든 만큼 갑자기 갈피를 못잡고 흔들린다. 낮에 깨어 있지만 어쩐지 몽상을 하는 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고, 특히 식사를 마친 한 두시간 사이에는 소화기간에 에너지가 집중되 두뇌가 작동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냐는 선배들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이러한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상태라면 어느정도 균형감을 찾아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두 번째로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메뉴얼 없이 취재방식을 배우는 훈련방식이다. 사실 이른바 "언론고시"를 2년 가까이 했지만, 언론사 입사에 필요한 공부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너무 다르다. 막상 수습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중요한 건 무언가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무언가를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다. 얼마 주어지지 않은 시간에 취재를 하고, 허겁지겁 정리한 모으기만 한 정보를 다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선배에게 보고하는 능력까지 - 일종의 "논스톱 정보제공 서비스" 시스템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취재를 하다보니, 정보를 "손에 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꼈다. 어떤 사건사고가 생기면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나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붙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OOO동에 사는 OOO씨가 월곡역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다가 마주오전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정도의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이 문장은 "사고가 났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만, 기사로 쓰려면 거의 모든 언어적 요소마다 "빈틈"이 있다. 정보가 들어가야 하는 "빈틈"이다.
"오늘 새벽 1시 30분 서울 OOO동에 사는 OOO씨가 소형트럭을 몰고 월곡역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다가 마주오전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OOO동 몇 번지? / OOO씨의 나이, 직업, 자동차/ 음주운전 여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 중이었나/ 신호등 상태/ 오토바이 운전자 신원, 나이, 성별/ 오토바이 종류/ 배달차량인가? / 인명피해/ 재산피해/ 부상정도/ 사고 경위/ 못 봐서 부딛혔나, 과속이었나 등등
처음에는 선배들의 요구가 무리하게 느껴진다. 대체 왜 이런 것까지 물어보나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자질구레한 정보들이 기사를 쉽게, 논리적으로 쓸 때 모두 필요하다. 어느 선배의 말대로 "내 머릿 속에 사고 당시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져야" 누가 읽거나 봐도 이해하기 쉽게 기사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아직 수습에게 기사를 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다음 주부터 "단신 쓰기"를 시작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끼겠지?
잠시 후 저녁 8시 30분에 나는 다시 경찰서로 복귀한다. 종로, 성북, 종암 경찰서 세 곳을 두 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돌아다니면서 취재하고, 중간중간 소방서와 대학교 한 곳, 그리고 트위터로 들어오는 화재 속보를 정리해 보고하게 된다.
이번 주 목표는 첫째, 보고 시간 어기지 않고 둘째, "이야기 되는" 사건 두 개 이상 찾아내기다. 나를 "훈육" 할 일진 선배가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어 아쉽지만, 어떤 선배를 만나든 첫 일진 선배가 지적한 기본기들에 대해 잊지 않는 한 주를 보내겠다. 내일이 정월대보름, 겨울이 끝나간다. 진희정 생일 축하. 리민편집인 생일 미리 축하.
2012.2.5
용문동 집에서
원석
P.S: 나의 살던 고향은 용두산 중턱, 제천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