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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스크랩] 송지선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먹이고 싶다 / 김현진
- 우유
- 조회 : 2510
- 등록일 : 2011-05-26
출처 : http://hook.hani.co.kr/archives/28036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한심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남자가 어떤 이유로 섹스를 하는지는 남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여자보다는 간단하지 싶다. 어쨌거나 여자는 237가지나 된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동정해서, 안 그러면 관계가 멀어질까봐 겁이 나서,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여간 별별 이유가 다 있는데 그런 이유가 지겹도록 나오는 이 책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여자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부러운 여자다. 아마 그런 여자는 독립적이고 똑떨어지고 아주 야무질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주장하기 때문에 욕망 또한 매우 주체적일 것이며,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원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섹스하지 않는 주체적인 성생활을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원하지 않을 때 섹스하지 않는 게 뭐가 어렵냐고? 아마 남자가 원할 때마다 섹스할 수 없는 경우와 비슷한 빈도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당연히 원하지 않을 때 절대로 섹스하지 않는 야무진 여자들은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 건지, 어떻게 해서 어떤 여자들이 자신을 그런 상태까지 내던지게 되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경멸하는 눈빛으로든, 직접 말로 하든, 댓글로라든, 꼭 입 밖에 내어 말한다. 왜 저렇게 스스로를 함부로 할까? 왜 저렇게 싸게 굴까? 왜 여자가 자기 가치는 자기가 정하는 건데 왜 자기 자신을 함부로 하지? 어떻게 저렇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까? 자존감이 그렇게도 없어? 때때로 스스로를 내던졌던 여자들이, 자기를 내던졌던 바로 그 순간, 같이 있었던 남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깐 시궁창에 빠졌다는 듯 결국 야무진 여자들과 어울려 이런 말에 꼭 맞장구를 치므로 야무지지 못한 여자들은 끝끝내 고립된다. 아무도 그들이 괴로워하더라도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단지 손가락질하며 말할 뿐이다. 미친년 ㅋㄷ ㅋㄷ, 걸레, 정신병자, 관심병, 자살드립.
다 지겹도록 들어 본 적 있는 말이다. 왜 그렇게 자존심이 없냐고? 왜 그 따위로 사냐고? 대답해 주겠다. 그래, 후져서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보기에 막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가 그냥 걸레라서 그런 건 아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한심하게 걸레로 태어난 건 아니다. 당신이 어깨 누를 때 대차게 내치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끝내 ‘먹다 버린 년’이라는 말까지 쓸 수 있는 우리가, 관심병이라고 놀림받아도 어느 누가 조막만큼이라도 따뜻하게 굴어 주면 거기 기대서라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던 우리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래 열등한 미친년이라서만 그런 건 아니다. 멀쩡한데 그냥 미친 거 아니다. 그래, 우리 자존감 없다. 당신의 넘치는 자존감 좀 기부해 달라. 남의 일에 일일이 미친년 ㅈ1랄한다고 참견하며 댓글 달 수 있는 그 여유 좀 기증해 줘라. 그놈의 ‘자존감’이란 걸 돈으로 살 수라도 있다면 사채라도 써서 대량으로 구입하겠다.
하지만 도대체 그걸 어디서 살 수 있단 말인가. 끝내 미친 여자 취급 받게 되고, 자신을 함부로 굴린다는 비웃음 받는 여자들을 보면 대체로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다. 마음이 약하면 자존감도 모자란다. 마음에 모자라는 구석이 있고, 그러면 자연히 모자라는 여자처럼 덜떨어지게 굴게 되고, 마음에 있는 텅 빈 자리에 그놈의 사랑이라는 걸 받아서 자기를 채우고 싶다. 영영 이렇게 모자란 채 살게 될까봐 사랑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끝도 없이 겁이 나고 고독할 때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이런 여자들이 이용당하기 가장 좋은 시각이다.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하니까.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버림받을까봐 겁이 나서 결국 통째로 자신을 내주게 되지만 대체로 이러한 종류의 항복은 전혀 보답받지 못한다.
그 오프라 윈프리조차도 자신을 ‘웰컴 매트’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현관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의 흙 쓱쓱 문질러 닦는 그 매트 말이다. 사실 스스로를 0%의 의심도 없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무섭고 강퍅한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아무리 노래를 들어 봐야 그깟 노래 따위, 사랑을 받아 봐야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건데 온 세상에서 미친년 취급을 받고도 굳건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독하고 무서운가. 스스로 자기가 정말 좋아 죽겠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될 수 있는 한 그 사람을 멀리 하고 싶다. 물론 그쪽에서도 나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겠지만 전속력으로 내빼고 싶다.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하고도 될 수 있는 한 척지고 싶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을 힘이 있으면, 이 아니라 그 힘밖에 안 남을 때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지옥이 있다. 당신이 못 봤다고 그런 거 없는 거 아니다. 그런 지옥에 살던 여자 하나가 끝내 죽었다.
순식간에 안 사귄다고 야속하게 내친 남자가 야속하긴 하지만 그 사람이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악플이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스스로가 못나서 죽은 거라 할 수도 없고, 죽인 사람은 없는데 죽은 사람만 있다. 하지만 진짜 죄인이 있다면 아마 지금 당장 남자라도 자살했으면, 혹은 그에 준하는 무슨 일이 또 일어났으면, 하고 두근두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를 갈구하고 또 갈구하는 사람들, 이거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ㅋㄷㅋㄷ 거리면서 흥미진진한 사람들, 한마디 준엄하게 판단하면서 내심 드라마를 더 보고 싶어 목마른 인간들. 이것들이야말로 진짜 악마다. 너무 흔해 빠져서 알아볼 수조차 없는 악마, 자기 삶에서 드라마를 만들 여유도 능력도 성의도 없지만 드라마틱한 건 보고 싶고, 그렇게 남의 일에 말 한 마디 간편하게 거들면서 사는 것들.
건너 건너라도 아는 사이였다면 송지선에게 팔팔 끓인 선지 해장국을 안주로 술이라도 한 잔 사먹이고 싶었다. 인터넷 같은 거 다 끊어 버리고 아이폰 같은 문명의 이기는 좀 던져 버리라고, 트위터 확인하지 말고 싸이월드 따위 다 끊어 버리라고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내 친구였다면 당장 컴퓨터에 랜선 잘라 버리고 대신 이거 하면 시간 팍팍 간다고 시드 마이어의 ‘문명’ 게임 시리즈라도 깔아 주고 싶었다. 잘 가라 당신,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리 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게 그냥 자살‘드립’으로 끝날 만큼 당신이 세게 사는 걸 봤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혹시라도 남자 때문에 울고 사람 입에 오르내려 우는 여자 있거든 그냥 이것저것 다 끊어버려라, 목숨만 빼고, 제발. 고래 힘줄보다 더 안 끊어지는 거 관심인 거 다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인터넷이고 SNS고 소통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때론 그 소통에서 좀 피해 살아야 할 때가 있다. 한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유명했다. 얼어 죽을 소리, 피하지 못해도 제발 피해라. 될 수 있는 한 피해서, 어떻게든 잘 피해서 우리 부디 살아서 만나자.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한심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남자가 어떤 이유로 섹스를 하는지는 남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여자보다는 간단하지 싶다. 어쨌거나 여자는 237가지나 된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동정해서, 안 그러면 관계가 멀어질까봐 겁이 나서,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여간 별별 이유가 다 있는데 그런 이유가 지겹도록 나오는 이 책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여자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부러운 여자다. 아마 그런 여자는 독립적이고 똑떨어지고 아주 야무질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주장하기 때문에 욕망 또한 매우 주체적일 것이며,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원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섹스하지 않는 주체적인 성생활을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원하지 않을 때 섹스하지 않는 게 뭐가 어렵냐고? 아마 남자가 원할 때마다 섹스할 수 없는 경우와 비슷한 빈도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당연히 원하지 않을 때 절대로 섹스하지 않는 야무진 여자들은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는 건지, 어떻게 해서 어떤 여자들이 자신을 그런 상태까지 내던지게 되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경멸하는 눈빛으로든, 직접 말로 하든, 댓글로라든, 꼭 입 밖에 내어 말한다. 왜 저렇게 스스로를 함부로 할까? 왜 저렇게 싸게 굴까? 왜 여자가 자기 가치는 자기가 정하는 건데 왜 자기 자신을 함부로 하지? 어떻게 저렇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까? 자존감이 그렇게도 없어? 때때로 스스로를 내던졌던 여자들이, 자기를 내던졌던 바로 그 순간, 같이 있었던 남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깐 시궁창에 빠졌다는 듯 결국 야무진 여자들과 어울려 이런 말에 꼭 맞장구를 치므로 야무지지 못한 여자들은 끝끝내 고립된다. 아무도 그들이 괴로워하더라도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단지 손가락질하며 말할 뿐이다. 미친년 ㅋㄷ ㅋㄷ, 걸레, 정신병자, 관심병, 자살드립.
다 지겹도록 들어 본 적 있는 말이다. 왜 그렇게 자존심이 없냐고? 왜 그 따위로 사냐고? 대답해 주겠다. 그래, 후져서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보기에 막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가 그냥 걸레라서 그런 건 아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한심하게 걸레로 태어난 건 아니다. 당신이 어깨 누를 때 대차게 내치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끝내 ‘먹다 버린 년’이라는 말까지 쓸 수 있는 우리가, 관심병이라고 놀림받아도 어느 누가 조막만큼이라도 따뜻하게 굴어 주면 거기 기대서라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던 우리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래 열등한 미친년이라서만 그런 건 아니다. 멀쩡한데 그냥 미친 거 아니다. 그래, 우리 자존감 없다. 당신의 넘치는 자존감 좀 기부해 달라. 남의 일에 일일이 미친년 ㅈ1랄한다고 참견하며 댓글 달 수 있는 그 여유 좀 기증해 줘라. 그놈의 ‘자존감’이란 걸 돈으로 살 수라도 있다면 사채라도 써서 대량으로 구입하겠다.
하지만 도대체 그걸 어디서 살 수 있단 말인가. 끝내 미친 여자 취급 받게 되고, 자신을 함부로 굴린다는 비웃음 받는 여자들을 보면 대체로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다. 마음이 약하면 자존감도 모자란다. 마음에 모자라는 구석이 있고, 그러면 자연히 모자라는 여자처럼 덜떨어지게 굴게 되고, 마음에 있는 텅 빈 자리에 그놈의 사랑이라는 걸 받아서 자기를 채우고 싶다. 영영 이렇게 모자란 채 살게 될까봐 사랑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끝도 없이 겁이 나고 고독할 때가 있는데, 이때야말로 이런 여자들이 이용당하기 가장 좋은 시각이다.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하니까.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버림받을까봐 겁이 나서 결국 통째로 자신을 내주게 되지만 대체로 이러한 종류의 항복은 전혀 보답받지 못한다.
그 오프라 윈프리조차도 자신을 ‘웰컴 매트’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현관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의 흙 쓱쓱 문질러 닦는 그 매트 말이다. 사실 스스로를 0%의 의심도 없이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무섭고 강퍅한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아무리 노래를 들어 봐야 그깟 노래 따위, 사랑을 받아 봐야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건데 온 세상에서 미친년 취급을 받고도 굳건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독하고 무서운가. 스스로 자기가 정말 좋아 죽겠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될 수 있는 한 그 사람을 멀리 하고 싶다. 물론 그쪽에서도 나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겠지만 전속력으로 내빼고 싶다.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하고도 될 수 있는 한 척지고 싶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을 힘이 있으면, 이 아니라 그 힘밖에 안 남을 때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지옥이 있다. 당신이 못 봤다고 그런 거 없는 거 아니다. 그런 지옥에 살던 여자 하나가 끝내 죽었다.
순식간에 안 사귄다고 야속하게 내친 남자가 야속하긴 하지만 그 사람이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악플이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스스로가 못나서 죽은 거라 할 수도 없고, 죽인 사람은 없는데 죽은 사람만 있다. 하지만 진짜 죄인이 있다면 아마 지금 당장 남자라도 자살했으면, 혹은 그에 준하는 무슨 일이 또 일어났으면, 하고 두근두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를 갈구하고 또 갈구하는 사람들, 이거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ㅋㄷㅋㄷ 거리면서 흥미진진한 사람들, 한마디 준엄하게 판단하면서 내심 드라마를 더 보고 싶어 목마른 인간들. 이것들이야말로 진짜 악마다. 너무 흔해 빠져서 알아볼 수조차 없는 악마, 자기 삶에서 드라마를 만들 여유도 능력도 성의도 없지만 드라마틱한 건 보고 싶고, 그렇게 남의 일에 말 한 마디 간편하게 거들면서 사는 것들.
건너 건너라도 아는 사이였다면 송지선에게 팔팔 끓인 선지 해장국을 안주로 술이라도 한 잔 사먹이고 싶었다. 인터넷 같은 거 다 끊어 버리고 아이폰 같은 문명의 이기는 좀 던져 버리라고, 트위터 확인하지 말고 싸이월드 따위 다 끊어 버리라고 말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내 친구였다면 당장 컴퓨터에 랜선 잘라 버리고 대신 이거 하면 시간 팍팍 간다고 시드 마이어의 ‘문명’ 게임 시리즈라도 깔아 주고 싶었다. 잘 가라 당신,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리 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게 그냥 자살‘드립’으로 끝날 만큼 당신이 세게 사는 걸 봤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혹시라도 남자 때문에 울고 사람 입에 오르내려 우는 여자 있거든 그냥 이것저것 다 끊어버려라, 목숨만 빼고, 제발. 고래 힘줄보다 더 안 끊어지는 거 관심인 거 다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인터넷이고 SNS고 소통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때론 그 소통에서 좀 피해 살아야 할 때가 있다. 한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유명했다. 얼어 죽을 소리, 피하지 못해도 제발 피해라. 될 수 있는 한 피해서, 어떻게든 잘 피해서 우리 부디 살아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