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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 광란의 밤을 위한 준비는 돼 있다
- 방구붕
- 조회 : 3256
- 등록일 : 2010-04-11
어느덧 한풀 꺾인 날씨에 슬슬 외투를 하나둘씩 벗어드는 푸르른 4월, 온 몸 쫙 펴고 찐하게 한번 놀 수 있는 날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딩동’하고 울렸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2기 유정화가 3기 구세라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했다.
19:00 3기는 대도시 서울의 화려함을 이기려는 듯 서울보다 화사한 tea카페에서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돈오>에 입사한 강성원도 퇴근 뒤 합류하여 동기애를 과시했다. 고향땅과 충북 제천만이 남한의 전부인 줄 아는 3기에게 대도시 방문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격주 저널리즘 특강을 위한 세 번의 상경은 수업이 끝난 뒤, 다양한 서울 행사를 기대하게 했다.
21:00 예측 불가능한 급만남은 3기 구세라의 한 마디로 진행됐다. “출동이다, 가자!”
역사적인 2기와 3기의 만남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장소에서 열렸다. 말발로는 그 어느 분야에서도 따라잡지 못할 예비 언론인들, 충북 순회공연을 방금 마치고 돌아온 개.콘 듀엣이며 존재만으로 자리를 빛내주던 미남 미녀가 우리와 늘 함께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서울에서 마시는 소맥은 제천산 막걸리보다 맛이 덜해 술맛보다 사람맛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23:00 “친해지고 싶어요” 세저리 음주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2기 A는 “조금 취한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 “술 취해 하는 말은 아니야”라고 운을 뗀 뒤 이같이 말했다. ‘그래요, 저희도 그래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채 응어리져 있던 말이 가슴 안에서 요동쳤다.
24:00 금요일의 밤은 따뜻했다. 봄기운보다 뭉친 인간들의 술내에 온 몸이 벌게졌다. 오늘은 광란의 밤이 될 거라는 듯 말하지 않아도 짐짓 눈치 채고 있었다. ‘오늘만을 기다렸다’, ‘우리도 좀 논다’ 좀 노는 언니오빠는 본디 막차 시간 따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3기는 어느새 언니오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열두시만 되면 신데렐라로 변신하던 그때 그 시절은 대도시에서 통하지 않았다.
3:30 ‘철의 20대’는 노래방을 선택해야만 한다. 어디든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마이크 잡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세저리에 왔다는 건 어디서건 이 같은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소녀시대의 GEE는 언제나 막둥이를 맡고 있는 3기 임현정의 것이다. 소녀시대 GEE는 지루하다. 현정의 GEE는 신비롭다. 소녀시대 GEE는 울림이 없다. 현정의 GEE는 사람을 춤추게 한다. 그녀의 또 다른 주제곡은 태연의 ‘들리나요’가 있다. ‘서성이게 해, 눈물짓게 해.... 이 사랑은 멈출 수가 없나봐...’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가녀리다. 심지어 가슴이 아린다. 그녀에게 무슨 일 있음이 틀림없다.
‘무인도’를 열창하는 3기 윤성혜는 어떤가. 성혜는 3기 여학우의 눈과 귀와 팔과 다리가 되어주는 여신으로, 그 존재는 이미 으뜸이다. 그런 그녀가 1970년 당시 화제의 주인공이었던 김추자의 ‘무인도’를 열창하니 그녀의 눈길을 얻기 위한 혈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지켜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 도여’ 가사와 마음이 닿지 않으면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노래다. 무슨 일인지 성혜의 노래에, 기자의 마음이 철렁했다.
4:30 무아지경의 상황은 서서히 정리됐다.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파란 간선 버스가 저쪽에서 기어오고 있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청소부 청년과 어르신이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4:50 최후의 2,3기 10인은 행선지가 다른, 각각 다른 번호가 적힌 버스에 올랐다. T머니 교통카드를 댔다. ‘찍’하는 소리가 났다. 2, 3기 합동 광란의 밤은 가고, 찍찍찍찍, 이명박 시대에 사는 세저리 청춘들의 하루가 또 이렇게 흘렀다.
방구붕 기자 bangub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