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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 뉴스* 2/3(수) (번외편)
- 이보라
- 조회 : 3311
- 등록일 : 2010-02-03
-의도치 않게 저 이후로 세저리뉴스가 휴간아닌 휴간이 된 바람에,
세저리뉴스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뉴스"는 아니고, 그냥 오늘 느낀 이런 저런..감상들입니다..^^:-
물리학에 ‘벡터’와 ‘스칼라’라는 게 있다. 스칼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크기만 가지고 있는 물리량이다. 질량이나 온도, 크기 등 물체의 속성과 관련 있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양으로서 두 가지 정보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화살표로 나타낸다. 속도, 가속도, 힘, 전기장, 자기장 등 대부분의 중요한 물리량은 바로 벡터다. 화살표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삶의 방향성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던가? 포기하는 삶은 의외로 평화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박제된 삶일 뿐이다. 내가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하는 건 바로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품고만 있으면 스칼라로만 존재하여 구체적인 힘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방향을 품고 있어야 벡터가 되어 현실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그 벡터의 방향성이 바로 사랑이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김경집,「책탐」中 --------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저에게 삶의 방향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다시 도전하는 일에 있어서 방향성이란, ‘**대학, **학과’ 정도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겠지요.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하면 뭐든 되겠지’라는 생각만 했을 뿐, 구체적인 삶의 방향과 목표를 세우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남들도 딱히 무언가 목표를 세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몇 년이 흐르면서, 제 주위에는 막연한 줄만 알았던, 그저 ‘꿈’일것만 같았던 목표에 근접해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제 스스로 힘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학창시절 나의 ‘스칼라’를 품고만 있었다는 것.
구체적인 목표와 삶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채 멍하니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에 꽤나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후회는 지금까지도 제 발목을 붙잡고 중요한 기로마다 저를 괴롭힙니다.
오늘 읽은 위 구절은 지금도 벡터를 제대로 찾지 못한 어리석고 한심한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자신만의 스칼라만을 가지고 제천의 세명대라는 안락한 휴식처, 혹은 도피처에서 막연한 이상을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뼈저리게 반성중인 저처럼 말입니다.
그저 현실과 동떨어진 이 제천이라는 공간에서, 사회과학 서적, 가끔은 달콤한 소설도 읽으며 초코파이의 머쉬멜로우같은 감정에도 빠졌다가, 시사현안에 관해 부끄러움도 없이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편견을 쏟아내고,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가득찬 논술을 끄적이며,
“아. 제천은 참 아름다운 곳이야. 공기도 좋고, 공부하기에도 너무 편해.
이렇게 공부하다보면, 어디에 붙어도 붙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1년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저에게 제천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고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포기하는 삶은 의외로 평화로울 수 있다’는 구절이 내 이야기인것만 같아서 마치 옷을 홀딱 벗은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막연히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꿈보다는
예를 들어, 삶의 단면 하나도 놓치지 않는, 한심하고 답답한 세태를 꼬집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원한 칼같은 글(봉숭아학당의 동혁이형처럼)을 지면에 꽂을 수 있는 신문 기자가 되어야겠다.
어느 소재가 주어지더라도 무릎을 ‘탁’ 칠만큼 기발하고 새로운 시각의 글을 쓸 수 있는 훌륭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
**매체의 대표기자가 되고 싶다.
는 등의 방향성을 갖추어야겠습니다.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이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한국일보에 입사한 성명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황)경상이가, 술을 많이 먹었다 아이가. 또 취하기도 제일 심하게 취했데이. 별로 마시지 않아도 말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놈아가 1학기때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나보데...”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했던 그 해, 경상선배는 많은 언시생들이 선망하는 ‘경향신문’ 에 당당히 입사했습니다. 선배님들, 교수님들의 이야기로는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공부에 에너지를 쏟아버려 소량의 술에도 잘 취했나봅니다.
원래, 공부를 많이 할수록 부족한 부분이 더 보여서, 더 괴롭고, 항상 모자란 듯 불안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경상선배뿐 아니라. 언론고시를 뚫고 입사한 선배들은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를 달래고자 술도 자주 마셨을 것입니다.
나만의 벡터를 세워야겠습니다. 반드시 삶의 방향을 정립하고 난 다음에, 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동료들, 교수님들 쫓아다니며 첨삭 봐달라고 떼도 써야겠습니다. 단 한순간도 게을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결국 기자다운 ‘글쓰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해야겠습니다. 현실에 좌절하고 슬퍼하는 만큼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견고해진 논리로, 유연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제천에서의 평안했던 1년을 반성하는 노루누나, 이보라였습니다.
(-.- 용두사미 같은 허접한 글이네요. 아. 밤도 아닌데 멜랑꼴리한 저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 감사해횻...훗훗훗...)
세저리뉴스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뉴스"는 아니고, 그냥 오늘 느낀 이런 저런..감상들입니다..^^:-
물리학에 ‘벡터’와 ‘스칼라’라는 게 있다. 스칼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크기만 가지고 있는 물리량이다. 질량이나 온도, 크기 등 물체의 속성과 관련 있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양으로서 두 가지 정보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화살표로 나타낸다. 속도, 가속도, 힘, 전기장, 자기장 등 대부분의 중요한 물리량은 바로 벡터다. 화살표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은 곧 삶의 방향성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던가? 포기하는 삶은 의외로 평화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박제된 삶일 뿐이다. 내가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하는 건 바로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품고만 있으면 스칼라로만 존재하여 구체적인 힘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방향을 품고 있어야 벡터가 되어 현실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그 벡터의 방향성이 바로 사랑이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김경집,「책탐」中 --------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저에게 삶의 방향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다시 도전하는 일에 있어서 방향성이란, ‘**대학, **학과’ 정도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겠지요.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하면 뭐든 되겠지’라는 생각만 했을 뿐, 구체적인 삶의 방향과 목표를 세우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남들도 딱히 무언가 목표를 세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몇 년이 흐르면서, 제 주위에는 막연한 줄만 알았던, 그저 ‘꿈’일것만 같았던 목표에 근접해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제 스스로 힘으로 삶을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학창시절 나의 ‘스칼라’를 품고만 있었다는 것.
구체적인 목표와 삶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채 멍하니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에 꽤나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후회는 지금까지도 제 발목을 붙잡고 중요한 기로마다 저를 괴롭힙니다.
오늘 읽은 위 구절은 지금도 벡터를 제대로 찾지 못한 어리석고 한심한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자신만의 스칼라만을 가지고 제천의 세명대라는 안락한 휴식처, 혹은 도피처에서 막연한 이상을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뼈저리게 반성중인 저처럼 말입니다.
그저 현실과 동떨어진 이 제천이라는 공간에서, 사회과학 서적, 가끔은 달콤한 소설도 읽으며 초코파이의 머쉬멜로우같은 감정에도 빠졌다가, 시사현안에 관해 부끄러움도 없이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편견을 쏟아내고,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가득찬 논술을 끄적이며,
“아. 제천은 참 아름다운 곳이야. 공기도 좋고, 공부하기에도 너무 편해.
이렇게 공부하다보면, 어디에 붙어도 붙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1년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저에게 제천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고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치열한 고민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포기하는 삶은 의외로 평화로울 수 있다’는 구절이 내 이야기인것만 같아서 마치 옷을 홀딱 벗은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막연히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꿈보다는
예를 들어, 삶의 단면 하나도 놓치지 않는, 한심하고 답답한 세태를 꼬집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원한 칼같은 글(봉숭아학당의 동혁이형처럼)을 지면에 꽂을 수 있는 신문 기자가 되어야겠다.
어느 소재가 주어지더라도 무릎을 ‘탁’ 칠만큼 기발하고 새로운 시각의 글을 쓸 수 있는 훌륭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
**매체의 대표기자가 되고 싶다.
는 등의 방향성을 갖추어야겠습니다.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이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 한국일보에 입사한 성명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황)경상이가, 술을 많이 먹었다 아이가. 또 취하기도 제일 심하게 취했데이. 별로 마시지 않아도 말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놈아가 1학기때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나보데...”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했던 그 해, 경상선배는 많은 언시생들이 선망하는 ‘경향신문’ 에 당당히 입사했습니다. 선배님들, 교수님들의 이야기로는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공부에 에너지를 쏟아버려 소량의 술에도 잘 취했나봅니다.
원래, 공부를 많이 할수록 부족한 부분이 더 보여서, 더 괴롭고, 항상 모자란 듯 불안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경상선배뿐 아니라. 언론고시를 뚫고 입사한 선배들은 단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를 달래고자 술도 자주 마셨을 것입니다.
나만의 벡터를 세워야겠습니다. 반드시 삶의 방향을 정립하고 난 다음에, 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동료들, 교수님들 쫓아다니며 첨삭 봐달라고 떼도 써야겠습니다. 단 한순간도 게을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결국 기자다운 ‘글쓰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까요...
좌절하고 슬퍼하며 노여워해야겠습니다. 현실에 좌절하고 슬퍼하는 만큼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견고해진 논리로, 유연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제천에서의 평안했던 1년을 반성하는 노루누나, 이보라였습니다.
(-.- 용두사미 같은 허접한 글이네요. 아. 밤도 아닌데 멜랑꼴리한 저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 감사해횻...훗훗훗...)
- 이전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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