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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칼럼의 최후 방어선 못 지킨 복거일 칼럼 (시사인 고재열 기자)
- 고승정
- 조회 : 5259
- 등록일 : 2008-06-15
칼럼의 최후 방어선 못 지킨 복거일 칼럼
<조선일보 칼럼 논술 첨삭지도, 번외편-복거일 >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논술 첨삭지도를 했다. 입시생들이 쓴 논술답안지를 채점하고 첨삭 지도를 하는 것이었는데, 벌이가 괜찮았다. 이후 논술 글을 보면 빨간펜을 들고 덤비는 버릇이 생겼다. 겨우 이 버릇을 고쳤는데, 최근 이 버릇이 다시 도졌다.
버릇을 다시 도지게 만든 글은 6월8일 <조선닷컴>에 실린 ‘김대중고문 특별기고 - 촛불시위 vs 1인시위’라는 글이었다. 이후 <조선일보>를 유심히 보았는데, 역시나 문제가 있는 칼럼이 많았다. 특히 6월12일자 아침논단에 실린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은 칼럼의 최후 방어선을 지키지 못한 ‘졸작’이었다.
편의상, <조선일보>를 ‘조선고등학교’라 하고, 그곳의 칼럼니스트들을 ‘학생’이라고 하자. 이곳 학생들 중에서 특히 김대중군과 류근일군의 글에서 문제가 많은 곳 같다, 이곳 자매학교 ‘월간조선여고’ 출신인 조갑제군의 글에서도 문제를 많이 발견하곤 했다. 먹고 살기 바쁘지만 짬을 내 이들의 칼럼에 첨삭지도를 해주기로 했다.
복거일군 보아요
6월1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 잘 읽었어요.
복군이 쓴 글의 요지는 이렇죠.
1) 이명박 대통령은 적군에 휩싸여 있어 자칫하면 패주(敗走)가 될 수 있다.
2)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법의 권위를 지켜야하는데 대선 고소-고발을 취하한 것은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3) 대통령이 법질서 수호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자식뻘 되는 경찰들과 함께 서야 한다.
4) 그래서 운이 닿으면 거친 군중을 설득할 수 있고, 운이 다했으면 거기서 정치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
복군에 글에 대해 선생님은 좋은 평가 한 가지와 나쁜 평가 한 가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나쁜 평가는, 선생님이 일전에 첨삭지도를 해주었던 김대중군의 글보다 못하다는 것이구요.
좋은 평가는, 선생님이 앞으로 지도해주려고 하는 조갑제군의 글보다는 낫다는 것이에요.
선생님의 평가에 실망하지도, 자만하지도 말기 바래요.
셋 다 고만고만하다는 얘기니까요.
복군의 글은 비유가 잘못된 것 같아요.
촛불집회로 고립된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적군에 포위된 지휘관’에 비유할 수 있죠?
국민이 대통령의 적인가요?
복군의 글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단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폭도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와서 폭동을 하죠?
어떤 폭도가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 소동을 일으키나요?
물론 선생님은 복군의 생각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법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대선 관련 고소-고발을 취하한 것은 법의 권위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데 동의해요.
그리고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나서 통합민주당 측으로부터 감사인사를 받기는커녕 한나라당이 ‘무고’를 했다고 거꾸로 사과를 요구당하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삽질’을 했다는 분석에도 동의해요.
선생님이 복군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광화문 사거리 한 복판에 콘테이너 장벽(명박산성)을 쌓은 것은 어떤 법에 근거한 것이지요?
대로 한복판에 콘테이너를 쌓으면 법의 권위 또한 높아지나요?
복군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한 방송’에 대해서 지금껏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한탄했어요.
그런데 이런 평가는 너무 자의적인 것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국민에게 편향된 방송’을 한 것 같은데, 공영방송이 그렇게 하는 것이 죄인가요?
그리고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에요. 잘못이 있다면 시청자가 물어야지요. 대통령이 주인인가요? 대통령도 시청자의 한 명일 뿐이랍니다. 국영방송이라면 또 모를까.
복군은 법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1964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를 ‘위대한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온건한 것은 미덕이 아니다’는 그의 말을 전했지요.
그러나 복군이 소개한 ‘위대한 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의 비극은 린든 존슨보다 살짝 덜 위대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선거에서 졌죠.
선생님은 배리 골드워터보다 살짝 더 위대했던 ‘위대한 진보주의자’ 린든 존슨의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을 소개해 주고 싶어요.
린든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빈곤의 퇴치를 꾀했고 민권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시켰죠.
그래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흑인인 킹 목사의 이념은 백인인 존슨 대통령에 의해서 구현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복군은
‘대통령이 법질서 수호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자식뻘 되는 경찰들과 함께 서야 한다’
그래서 ‘운이 닿으면 거친 군중을 설득할 수 있고, 운이 다했으면 거기서 정치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라고 했어요.
참 좋은 아이디어같아요.
대신 이 대통령이 현장에 나올 때는 고양이를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지금 대통령을 잡겠다는 ‘낭만 고양이’들이 광화문에는 아주 많답니다.
복군은 이렇게 대통령이 힘들게 법의 권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려 애써온 시민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검은 군복을 입은 자들이 프로판가스통을 메고 와서 대통령을 지켜줄 거에요.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폭력 프랜들리’한 그들이 지켜줄 거에요.
아무툰 복군,
복군은 참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 같아요.
이 담에 크면 소설가가 되면 대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되도록 칼럼은 쓰지 마세요.
복거일군과 세상, 모두에게 득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선생님이 아는 학생 중에 이문열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이 끼치는 해악을 충분히 봐왔던 터라 선생님은 되도록 말리고 싶네요.
복거일 칼럼 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1/2008061102088.html
<조선일보 칼럼 논술 첨삭지도, 번외편-복거일 >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논술 첨삭지도를 했다. 입시생들이 쓴 논술답안지를 채점하고 첨삭 지도를 하는 것이었는데, 벌이가 괜찮았다. 이후 논술 글을 보면 빨간펜을 들고 덤비는 버릇이 생겼다. 겨우 이 버릇을 고쳤는데, 최근 이 버릇이 다시 도졌다.
버릇을 다시 도지게 만든 글은 6월8일 <조선닷컴>에 실린 ‘김대중고문 특별기고 - 촛불시위 vs 1인시위’라는 글이었다. 이후 <조선일보>를 유심히 보았는데, 역시나 문제가 있는 칼럼이 많았다. 특히 6월12일자 아침논단에 실린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은 칼럼의 최후 방어선을 지키지 못한 ‘졸작’이었다.
편의상, <조선일보>를 ‘조선고등학교’라 하고, 그곳의 칼럼니스트들을 ‘학생’이라고 하자. 이곳 학생들 중에서 특히 김대중군과 류근일군의 글에서 문제가 많은 곳 같다, 이곳 자매학교 ‘월간조선여고’ 출신인 조갑제군의 글에서도 문제를 많이 발견하곤 했다. 먹고 살기 바쁘지만 짬을 내 이들의 칼럼에 첨삭지도를 해주기로 했다.
복거일군 보아요
6월1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 잘 읽었어요.
복군이 쓴 글의 요지는 이렇죠.
1) 이명박 대통령은 적군에 휩싸여 있어 자칫하면 패주(敗走)가 될 수 있다.
2)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법의 권위를 지켜야하는데 대선 고소-고발을 취하한 것은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3) 대통령이 법질서 수호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자식뻘 되는 경찰들과 함께 서야 한다.
4) 그래서 운이 닿으면 거친 군중을 설득할 수 있고, 운이 다했으면 거기서 정치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
복군에 글에 대해 선생님은 좋은 평가 한 가지와 나쁜 평가 한 가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나쁜 평가는, 선생님이 일전에 첨삭지도를 해주었던 김대중군의 글보다 못하다는 것이구요.
좋은 평가는, 선생님이 앞으로 지도해주려고 하는 조갑제군의 글보다는 낫다는 것이에요.
선생님의 평가에 실망하지도, 자만하지도 말기 바래요.
셋 다 고만고만하다는 얘기니까요.
복군의 글은 비유가 잘못된 것 같아요.
촛불집회로 고립된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적군에 포위된 지휘관’에 비유할 수 있죠?
국민이 대통령의 적인가요?
복군의 글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단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폭도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와서 폭동을 하죠?
어떤 폭도가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 소동을 일으키나요?
물론 선생님은 복군의 생각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법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대선 관련 고소-고발을 취하한 것은 법의 권위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데 동의해요.
그리고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나서 통합민주당 측으로부터 감사인사를 받기는커녕 한나라당이 ‘무고’를 했다고 거꾸로 사과를 요구당하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삽질’을 했다는 분석에도 동의해요.
선생님이 복군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광화문 사거리 한 복판에 콘테이너 장벽(명박산성)을 쌓은 것은 어떤 법에 근거한 것이지요?
대로 한복판에 콘테이너를 쌓으면 법의 권위 또한 높아지나요?
복군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한 방송’에 대해서 지금껏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한탄했어요.
그런데 이런 평가는 너무 자의적인 것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국민에게 편향된 방송’을 한 것 같은데, 공영방송이 그렇게 하는 것이 죄인가요?
그리고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에요. 잘못이 있다면 시청자가 물어야지요. 대통령이 주인인가요? 대통령도 시청자의 한 명일 뿐이랍니다. 국영방송이라면 또 모를까.
복군은 법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1964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를 ‘위대한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온건한 것은 미덕이 아니다’는 그의 말을 전했지요.
그러나 복군이 소개한 ‘위대한 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의 비극은 린든 존슨보다 살짝 덜 위대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선거에서 졌죠.
선생님은 배리 골드워터보다 살짝 더 위대했던 ‘위대한 진보주의자’ 린든 존슨의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을 소개해 주고 싶어요.
린든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빈곤의 퇴치를 꾀했고 민권법을 제정해 공공장소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시켰죠.
그래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흑인인 킹 목사의 이념은 백인인 존슨 대통령에 의해서 구현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복군은
‘대통령이 법질서 수호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자식뻘 되는 경찰들과 함께 서야 한다’
그래서 ‘운이 닿으면 거친 군중을 설득할 수 있고, 운이 다했으면 거기서 정치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라고 했어요.
참 좋은 아이디어같아요.
대신 이 대통령이 현장에 나올 때는 고양이를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지금 대통령을 잡겠다는 ‘낭만 고양이’들이 광화문에는 아주 많답니다.
복군은 이렇게 대통령이 힘들게 법의 권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려 애써온 시민들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검은 군복을 입은 자들이 프로판가스통을 메고 와서 대통령을 지켜줄 거에요.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폭력 프랜들리’한 그들이 지켜줄 거에요.
아무툰 복군,
복군은 참 상상력이 풍부한 학생 같아요.
이 담에 크면 소설가가 되면 대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되도록 칼럼은 쓰지 마세요.
복거일군과 세상, 모두에게 득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선생님이 아는 학생 중에 이문열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이 끼치는 해악을 충분히 봐왔던 터라 선생님은 되도록 말리고 싶네요.
복거일 칼럼 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1/20080611020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