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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21]5공비리 땅 전두환 딸한테로
- 관리자
- 조회 : 7282
- 등록일 : 201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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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망각이다. 대중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지만, 때로, 바람만큼 금방 잊는다. 망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외교관 여권을 받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불행히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도 벌어졌던 일이다.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의 측근들은 유신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거나(김기춘 전 법무장관), 민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현경대 전 의원)했다. 20년 전 군인 대통령 시절 검찰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는 며칠 전에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올해에도 10월29일 ‘전두환 각하배 8회 동문가족 친선골프대회’를 연다. ‘전두환과 그의 시대’는 역사가 아니라 아직 우리가 마시는 공기다. <한겨레21>이 전두환(81) 전 대통령의 재산 의혹을 다시 조사했다. 전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재산은 여러 번 보도됐다. 시선을 돌려 전 전 대통령의 장인 집안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겨레21>은 결론지었다. 그 근거로 5공 비리의 상징적 땅이 전 전 대통령의 큰딸에게 증여된 사실을 단독으로 밝혔다. 비밀은 처가에 있었다. _편집자
2012년 1월12일 3700만원에 거래 6월항쟁 뒤인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던, 바로 그 13대 국회다. 5공 청문회가 구성됐다. 전 전 대통령은 쫓기기 시작했다. 1988년 11월25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눈물도 흘렸다. 전 재산이 “연희동 집 안채(대지 385평, 건평 116.9평)와 두 아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바깥채(대지 94평, 건평 78평), 서초동의 땅 200평, 그 밖에 용평에 콘도(34평) 하나와 골프회원권 2건 등이며, 금융자산은 재산등록 제도가 처음 실시된 83년 총무처에 등록한 19억여원과 그 증식이자를 포함해서 모두 23억여원”이라고 밝혔다. 담화 뒤 백담사로 떠났다. 5공 비리 청문회는 덕분에 잠잠해졌다. 거짓말이라는 게 금세 드러났다. 통일민주당의 김운환 당시 의원은 1989년 2월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순자씨가 시가 30억원 상당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산127-2번지 임야 2만6876㎡(8062평)를 소유하고 있음을 등기부등본을 근거로 폭로하고 5공 비리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창석씨가 1978년 2월20일 토지 소유권을 취득하고 몇 달 뒤인 1978년 6월10일 이순자씨가 소유권 이전 청구권 가등기를 해서 실질적인 소유권을 획득했다고 김 전 의원은 밝혔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한겨레> 등이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현재의 등기부등본에는 이창석씨가 1978년 2월17일 관양동 임야를 매매해 취득한 것으로 돼 있다. 이순자씨의 가등기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이창석씨는 이 땅을 2006년 잠시 ‘ㅅ부동산신탁회사’에 맡겼다 돌려받은 뒤 2006년 12월26일 전 전 대통령의 딸인 효선씨에게 증여했다. 관양동 땅 폭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산에 대해 한 해명이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관양동 땅이 5공 비리의 상징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이 이순자씨와 비슷한 시기에 관양동 땅 500번지 2526㎡(764평)를 샀다가 1985년 사위인 김상구 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게 줬다. 당시 야당은 이순자씨가 1983년 1월1일 시행된 공직자재산등록법을 피해 자신의 재산을 감추려고 명의신탁을 이용해 남동생 이창석씨 명의로 바꿨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운환 전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등기부등본이 없어서 쌀가마니 몇 개 분량의 관양동 일대 등기부등본을 전부 확인해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도 전 전 대통령의 현재 재산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창석씨는 관양동 땅 위에 77.79㎡(23.6평) 넓이의 1층짜리 단독주택을 지어 1984년 4월26일 등기부에 접수했다. 이창석씨는 이 단독주택을 2002년 1월15일 김아무개씨에게 매매했다. 매매로 몇 차례 소유자가 바뀐 끝에, 전효선씨는 2012년 1월12일 3700만원(등기부 기준)에 이 단독주택을 샀다.
견제받지 않는 세력, 급격하게 재산 불려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이창석씨는 이순자씨의 남동생이므로 처남이다. 5공화국 자금을 관리했다고 알려져 별명이 ‘5공녀’ 혹은 ‘공아줌마’인 홍정녀(60)씨는 이창석씨의 부인이다. 이들은 전 전 대통령의 직간접적 지원과 영향력을 이용해 치부했다. 전 전 대통령이 절대 권력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지금도 곳간지기로 추정된다. 전 전 대통령 재산과 관련한 비밀도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 법률적·도의적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전 전 대통령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59년 1월24일 이순자씨와 결혼했다. 전 전 대통령은 가난한 대위였고 이화여대 의과대학 58학번인 이순자씨는 대학 2년생이었다. 장인 이규동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 2기 동기였다. 당시 2군 사령부 관리부장이었다. 부대 운영을 책임졌다. 나중에 경리감을 했다. 부대의 돈과 행정을 책임졌다. 재테크에 밝았다. 전 전 대통령은 8년간 처가살이를 했다. 이들의 재테크는 ‘정보력’의 도움을 받았다. 이규동 전 회장의 동생, 즉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는 유신 말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설정보대 책임자였다. 1980년 이후 이들은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의 친·인척으로 신분 상승을 했다. 재산도 급격히 늘렸다. 1988년 전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엔 비자금을 관리했다. 이창석씨 집안 사람들이 전 전 대통령의 재산 ‘초기 형성-증식 과정-현재’를 모를 수 없는 이유다. 여전히 이창석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집안과 한 몸이다. 전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전재용(48)씨는 이창석씨의 회사 ‘삼원코리아’의 사내이사다. 이규동 전 회장은 죽기 전에 성강문화재단을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데 성강문화재단과 관련한 대부분의 토지와 건물 소유주가 전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 전재국(53)씨다. 성강재단 미술관 건물도 전재국씨가 소유한 것으로 밝혀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43 헤이리지-50 아티누스 건물에 입주해 있다. 이창석씨는 2006년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땅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매각해 결과적으로 전재용씨에게 수백억원의 사실상 ‘재산 증여’를 했다. 이창석씨의 삶도 흥미롭다. <동아일보> 88년 11월22일치 보도와 법원 판결을 참고하면, 1951년생인 이창석씨는 이규동씨의 막내아들로 광운공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해 경기도에 있는 아버지 농장에서 2년간 일을 도왔다.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가 운영하던 중소기업 ‘동양철관’에 취직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80년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일개 직장인에서 대통령의 처남이 됐다. 32살이 되던 1983년 과장에서 회사의 계열사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같은 해 납품업체 ‘동일’을 만들어 대표이사가 됐다. 포항제철 독점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매출이 급성장했다. 이창석씨는 1984~86년 (주)동일을 운영하며 회사 공금 29억여원을 가로채고 7억여원을 탈세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재판장 유근완)은 1990년 8월17일 “횡령한 돈을 부동산 매입 등 개인 소비에 사용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이씨를 법정 구속했다. 아버지 이규동씨도 자신이 소유하고 경영하던 경기도 화성 평화농장과 관련해 특혜를 많이 받았다.
서귀포 신시가지 개발에서 수십억 시세차익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용한 정황은 제주도 서귀포 땅 구입 사건에서도 엿보인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창석씨는 자신이 경영하던 ‘창원총업’(현재 삼원코리아) 명의로 1986년 5월부터 1987년 1월까지 서귀포시 신시가지 개발터와 인접한 서귀포시 영남동 372번지 등 영남동 임야 3만2427㎡(9826평)를 매입했다. 이창석씨가 이 땅을 2001년 5월2일 경기도 수원에 사는 허아무개씨에게 모두 매각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14년간의 땅값 상승을 생각할 때, 시세차익만 수십억원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귀포시 신시가지 조성 과정도 5공 비리의 상징이다. 신시가지 도시설계를 이정식씨가 맡았다. 그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의장인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부의장이면서 도시계획 용역업체인 대지종합기술공사 대표였다. 이정식씨는 도시계획을 용역받고는 몰래 아들 명의로 신시가지 조성지를 사들였다. 이창석씨 집안이 전 전 대통령 재산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이 있는 이유가 이런 것들이다. 홍정녀씨는 삼원코리아 감사다. 검찰도 이창석씨 집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2004년 전재용씨의 세금포탈 형사재판 때 이창석씨와 홍정녀씨 둘 다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창석씨의 재산은 크게 △아버지 이규동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동일’을 운영하며 빼돌린 회삿돈으로 형성한 부동산 △보유 부동산 처분 수익으로 한 재투자 등으로 추정된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평화농장’ 부지를 2010년 12월21일 오산랜드마크주식회사에 2275억원(등기부등본 기준)을 받고 팔았다. 1986~87년 창원총업 명의로 서귀포 신시가지 개발지 부근 영남동 땅을 매매해 챙긴 시세차익도 크다. 이 두 개만 합쳐도 3천억원에 가까운 현금자산이 된다. 기타 아파트를 판 돈, 보유 부동산, 회사 지분 등을 헤아리면 3천억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창석씨도 아버지처럼 부동산을 선호했다. 등기부등본에 ‘ㅅ부동산신탁’에 위탁한 사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부동산신탁이란 부동산은 있지만 경험과 자금이 없어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소유자가 소유권을 부동산신탁회사에 이전하고 부동산신탁회사는 고객이 맡긴 부동산을 개발·관리한 뒤 이익을 돌려주는 제도다. 이순자씨의 재산은 오리무중이다. 재산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2004년이 유일하다.
※ <한겨레21>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 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탐사할 예정입니다. 독자와 시민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dokko@hani.co.kr, 또는 우편접수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번지 한겨레신문 4층 한겨레21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김윤정 인턴기자 |